외도와 불륜의 파괴력

배우자는 제 2의 애착 대상

by 서이든

배우자의 배신이 치명적인 이유


왜 배우자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이렇게까지 치명적인 걸까.

나는 이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배우자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제2의 애착 대상이라는 사실을.

이것은 내 생각만이 아니다.
내가 심리 상담을 받았던 심리상담사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아기에는 부모와 애착을 형성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배우자와 두 번째 애착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즉, 성인이 된 이후
내가 애착을 형성한 대상은 남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혼하면서 부모와의 애착을 서서히 정리하고,
배우자와 어른으로서 새로운 애착을 형성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유아기 때처럼 생존 구조를 다시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결혼은
부모 중심의 생존 구조에서
배우자 중심의 생존 구조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는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큰 존재가 된다.

안전, 연결, 존재감의 근거.
내가 괜찮은 존재라는 그 감각.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배우자의 배신, 외도, 불륜,
반복적인 거짓말과 이탈은
단순한 도덕적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애착 대상이 행하는
정서적 폭력, 방임, 유기에 가깝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애정과 거절을 뒤섞으며,
책임 없이 돌봄과 방임을 반복한다면
그 아이의 정신 구조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아이가 부모를 떠날 수는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부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자의 배신과 방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고,
오직 생존만 하는 결혼을 유지하는 사람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불량 배우자에 대한 강박


나는 이 구조가 단순히 ‘의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불량 배우자란,
관계에 불량한 짓을 반복하는 배우자를 뜻한다.

외도와 불륜을 반복하고,
기만과 거짓말을 일삼고,
폭언과 폭력을 사용하거나,
중독으로 가정의 경제와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사람.


비극은,
이미 나를 해치고 있는 그 대상에게
내가 여전히 충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에게 분노하면서도,
나는 그 불량 배우자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인다.
그의 표정, 그의 반응이
내 감정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정신적인 고통은
외도를 반복하는 배우자 그 자체가 아닌,
내가 그 배우자와 여전히 연결되어 충성하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익숙하기 때문이다.


비극은 하나 더 있다.

나는 그에게 의존한다기보다는
그가 내 일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15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하면 그 사람을 나 자신과 분리하기 어렵다.

그건 사랑이 깊어서라기보단, 정체성이 이미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배우자가 기분이 나빠보이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내 마음이 먼저 걱정하기 시작한다.


또 이럴 수도 있다.

배우자가 나를 무시하거나 차갑게 대하면

"그 사람이 무례하다"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내면에서 먼저 떠오른다.


이렇게 그의 목소리 인지 나의 목소리인지, 그의 감정인지 나의 감정인지 구분이 안 가는 상태에서

나는 그에게 분노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떠나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를 하기 위해

결국 그의 잘못과 결함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거다.


“내가 나빠서 그래.”
“내가 더 잘했으면 달랐을 텐데.”


어린아이도 똑같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가 났어.”
“내가 더 잘하면 엄마는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아이의 행동과 상관없이 그 엄마의 분노 조절 장애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방임적인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와 같이,
나도 불량 배우자를 떠나지 못했다.


왜?


비록 폭력적이지만 익숙하고,
비록 나를 무시하지만 익숙하다.

이 불행한 패턴이 그때의 나에겐 안전하게 느껴졌었다.


결국 나는 묻는다.

여기서 누가 중독자인가?

불행에 대한 중독.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사람,
싫지만 놓을 수 없는 대상.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다.


내 중독에 대한 합리화, 바로 "내 탓이오"가 자기 파괴인 것이다.



진짜 외로움의 정체


부부는 서로에게 제2의 부모다.

사랑의 대상이자, 보호자이며, 양육자다.


어릴 때 엄마가 “잘했어”라고 말하면 정말 잘한 사람이 되었고,
“괜찮아”라고 하면 정말 괜찮아졌다.

부모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나는 세상을 탐험했다.

그래서 제2의 부모인 배우자의 반응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인이 된 나에 대한 감각, 나의 존재감은 많은 부분 배우자로부터 만들어진다.


그가 나를 떠나거나, 내가 그를 떠나려 하면 극심한 공포가 밀려오는 이유도

바로 내 존재감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를 부여잡고 함께 있는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극도의 외로움이 더 많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로운 내면과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낄 터인데

홀로 있어도, 배우자와 있어도, 이미 배우자의 목소리가 스며든 내 내면에서 이렇게 나에게 말을 하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무시해도 되는 여자야.”
“너는 중요하지 않아.”
“너의 욕구에는 관심 없어.”
“너는 매력적이지 않아.”
“난 준비되면 너를 떠날 거야.”


외로움이란

내 안에 나와 함께 있어줄 존재 "나를 지지하는 건강한 목소리"가 없을 때 생긴다.


이제 나는 안다.

왜 남편의 반복되는 외도에도 그를 떠나지 못했는지,
그렇다고 이혼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지 않고
지독히 외로웠는지.


치유의 방향


원인을 알면 치유는 빨라질 수 있다.

치유의 목표는 분명하다.


불량 배우자를 곁에 두지 않아도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

그를 붙잡고 나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는 것.

혼자 있어도 외로움이 아니라 고요함을 느끼는 상태.

이것이 회복의 목표다.


다음 장에서는
치유를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
그리고 왜 그 선택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선택은 중요하다.
사실 고통조차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선택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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