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 대신 콜로세움

불가리 비제로원 반지

by 서이든

처음으로 스스로 반지를 고른 날


여의도 근처에서 일이 끝나고, 나는 별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겸 ‘더 현대 서울’로 향했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며, 그 활기는 내게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해 준다. 나도 그날만큼은 남들처럼 가볍고 향기로운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반짝이는 것들, 예쁜 것들, 의미 없이 걷고 바라보는 그 시간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천천히 그 안을 걸었다.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물론 누구든 각자의 고민은 있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짓눌린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속에 섞여, 잠시나마 같은 리듬으로 호흡하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불가리 매장 앞에서 멈췄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반짝임에 끌려 들어갔다. 나는 원래 반짝반짝한 액세서리류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예쁜 물건 앞에서는 며칠씩 마음앓이를 하곤 했다. 나의 오랜 친구들은 잘 알 것이다. 용돈을 받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내가 얼마나 액세서리류를 좋아해서 사댔는지를..

그런 내가 지금 불가리 매장 안에 서 있는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반지라기보다는 불가리의 시그니처—나사처럼 생긴, 묵직하고 두껍고 볼드한 반지였다.
문득 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에게 요청하자 그는 아주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 태도가 진심이었는지, 훈련된 매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그 기본적인 존중은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삶도 어쩌면 이런 기본적인 태도만 지켜져도, 서로에게 덜 잔인해질 수 있을 텐데.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 순간, 묵직한 무게와 울퉁불퉁한 감촉이 바로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손가락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직원은 그 반지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반지를 낀 체 이리저리 손의 각도를 바꾸며 반지를 보고 있다가 그 얘기를 듣고 그냥 웃음이 났다.

콜로세움에서 싸우던 전사들이 갑자기 생각 나서다.


전사들..

힘들었겠지?

두려웠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과감하고 공격적이었을 테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그 전사들의 무게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도.. 아마도.. 그들 같은 에너지가 있어서였을까?..

있지만 잘 쓰지 않았던 ---

아니, 어쩌면 쓰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나의 남성적인 에너지.


나는 이제 혼자가 되었고,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유일한 사람이고

내 삶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그건 단지 마음속의 꽃밭을 가꾸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밖으로 나가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며,

필요하다면 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역할도

이제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내가 나의 남자에게 기대했던 일들을

이제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 두껍고 무거운 반지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내가 꺼내 써야 할 힘을 상기시키는 어떤 상징적인 물건처럼 느껴졌다.


"이든, 너가 네 아이들과 네 삶을 지키는 에너지를 느끼고, 바란다는 것은

네 안에 분명 그것들이 있다는 뜻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했을 뿐. "


"이든, 두려워하지 마.

너는 지금 미션을 수행 중이야.

넌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

넌 이걸 끝까지 해낼 사람이야. "


로마.


그 낯선 도시는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곳.

내가 20년 전 로마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나는 결국 그 반지를 구매했다.


충동적이었지만, 그 반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반지는 결혼반지와 결혼 생활 중 꼈던 모든 반지를 다 빼버린 텅 빈 내 손가락에

처음으로 끼워진 내가 고른 반지다.


내가 나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고,

내 삶을 지키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끼면 무겁고 두꺼워 불편하다.


내 삶도 그렇지 않나?


나는 지금 이 삶을 등에 지고 나가고 있다. 무겁고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오랜 전부터 믿는 게 있다.

불편한 곳에 답이 있다는 것을.

내가 지고 나가는 이 삶 속에는 반드시 내가 찾아야 할 답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시 세팅되는 것 같다.


소심하고, 아기자기한 이든이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 있고,

과감하고, 냉철하고, 필요할 때는 공격할 수 있는 이든이가 앞으로 나와 있는 상태.


이 반지는 바로 그 신호이다. 그래서 이 반지가 마음에 든다.


나는 앞으로도
콜로세움의 안과 밖을 오가며,
내 삶의 미션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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