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수용
버려짐은 언제나 어린아이의 언어로 찾아온다.
누군가 등을 돌리면,
누군가 문을 닫아버리면,
누군가 나를 외면하면,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먼저 울기 시작한다.
작고 약하고, 손바닥만 한 심장이
거친 공포로 덜컥거린다.
“엄마가 떠나면 나는 죽어.”
“아빠가 버리면 나는 사라져.”
배우자가 외도했을 때도,
거짓말했을 때도,
차갑게 등을 돌렸을 때도,
나의 심장은 어린아이의 심장처럼 똑같이 반응했다.
나는 그걸 처음엔 몰랐다.
너무 아팠고,
이 아픔을 ‘사랑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남편이 나를 떠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불안해서
그 감정을 사랑의 잔재라고 착각했다.
아니다.
그건 사랑의 통증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버려짐의 통증이었다.
성인인 서이든 의 애착 대상이었던 남편과 헤어지고,
그것도 배신으로 갈라지는 상황에서
나는 부모에게 폭행당하고 버려지는 어린아이의,
팔딱대는 심장을 느꼈던 것이다.
배신으로 인한 이혼은
비록 내가 스스로 서류에 도장을 찍어 결혼을 종료시켰지만
그 뒤에는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따라왔다.
나와 아이들의 손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친 남편을 붙잡을 수 없었고,
아니,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다는 결심—
그것이 이혼이었다.
그 극심한 아픔과 통증은
사랑의 고통도,
이혼 자체의 아픔도 아니었다.
거대한 상실의 고통,
버려짐의 고통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비록 어린아이처럼
심장이 떨리고 눈물이 펑펑 쏟아질지라도,
나는 성인이다.
나는 이미 자랐고,
이미 서 있었고,
내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으며,
아무도 나를 죽일 수 없다.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왜냐하면 나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버려지면
그것은 곧 죽음일 수 있지만,
나는 성인이기에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내 몸을 지키고,
내 세계를 만들고,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부모가 나를 버리면 끝나는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하지만 내 안의 아이는 아직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서이든, 너는 아이가 아니야.
너는 마흔셋의 어른이야.”
이제는 내가 내 안의 아이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어떤 의사도, 어떤 상담사도 해줄 수 없는 일.
배우자도, 친구도,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안의 그 겁먹은 아이에게 다가가
그 아이가 울면 안아주고,
그 아이가 떨면 감싸주고,
그 아이가 “무서워”라고 말하면
“괜찮아, 이제 내가 너를 지킬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일.
경험해 본 적 없는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버려져도 괜찮다.”
관계의 키는 더 이상 상대에게 있지 않다.
이제 나는 내 안의 아이에게
알아듣게 말해주어야 한다.
관계의 키는, 이제 나에게 있다.
아이였을 때는
모든 관계의 키가 부모에게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관계의 열쇠는
배우자에게도,
누군가의 손에도 없다.
이제는 내 손안에 있다.
관계의 키란,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힘은 없지만
떠나는 사람을 보내고 나 자신을 붙잡을 힘이 있다는 뜻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통스러웠고,
무서웠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버려져도 괜찮다.
그리고 떠나도 괜찮다.
죽지 않는다.
배우자가 끊어낸 것은
나와의 결혼이지,
나의 생명선이 아니었다.
배신은,
내 존재를 무너뜨리는 최후의 공격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공격은 나의 세계만 흔들었을 뿐,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
무너진 세계의 공터에 서서
나는 다시 조각을 주워 담았고,
조각을 붙이고,
빈 곳을 메우며
새로운 나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어려웠고,
처음이라 너무 낯설었지만
그래도 그 길을 걸었다.
우리는 모두 혼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감정이 희미할지라도
기억은 남아 있다.
결혼 전, 혼자였던 나.
혼자인데도 살아내던 나.
어설펐지만 설렘을 품고
앞으로 걸어가던 나.
배우자 이전의 서이든 의 필름이 천천히 풀리며 머릿속을 흘러갔다.
깨알처럼 재밌었던 학창 시절,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해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던 대학 시절,
상상하던 세계로 가고 싶었던 열정,
낯선 것에 끌리던 호기심,
독립이라 믿었던 직장인 시절,
내 밥줄을 내가 챙기겠다고 뛰어든 사업,
엄마가 되던 날의 벅차오르던 감정.
어느 한 시절도
허투루 살아온 적은 없었다.
그때도 즐거움과 두려움은
늘 함께 따라다녔다.
그런 인생의 기억이
당신을 다시 살릴 것이다.
그러니 버려져도 괜찮다.
그 공포는 지나갈 것이다.
그 길 끝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그동안 잘 살아온 당신 자신이 있다.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은 시간을 건너며 갸름해지고
더는 당신을 삼키지 못할 것이다.
식물을 돌보고,
몸을 움직이고,
글을 쓰고,
나를 가꾸고,
나를 다시 중심에 놓는 일들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숨을 조금 더 편하게 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깨닫게 된다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고요해졌다는 것을.
그 고요 속에서
당신은 마침내
자기 세계를 다시 짓는 사람으로 서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