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마치 사극에서 종종 보았던 비극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오만한 자가 결국 사약을 받아들고 안 먹고자 발버둥쳐대지만 결국 마실 수 밖에 없는 그 장면. 내 앞에 놓인 것은 사약이다. 이걸 마시면 모든 게 끝난다. 내가 만든 세계와 앞으로 내가 살거라고 믿었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 안에 울렸다.
믿었던 사람은 등을 돌렸고, 가족이라는 나의 세계가 무너졌고, 나는 숨을 쉬면서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 무너짐이 나를 살리기 위한 신의 방식이었다는 걸.
배신이 배경인 이혼은 최악이다. 왜냐하면 배신으로 인한 이혼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낙하산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뛰어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이제 안다. 배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신이 내게 “멈춰라, 이제 너의 길을 다시 가야 한다” 말없이 건넨 시작의 초대장이다. 그 초대장은 왜 그렇게 거칠고 모질진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 다시 시작하라는 초대장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 초대장을 받고도 오랫동안 그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배신과 이혼이라는 현실을 부정했고, 너덜너덜해진 세계를 붙잡으려 애썼다.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했고, 지금까지의 모습 그대로의 가정을 지키는 게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그 모든 믿음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평생 혼자 남을 까봐, 스스로 자립할 수 없을까봐, 무가치한 존재가 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고통속에서 처절하게 울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은 신이 나에게 던진 과제다. 모든 고통에는 내가 풀어야할 숙제가 숨어 있다. 회피하면 반복되고, 통과하면 그때서야 사라진다.
고통을 겪는 동안 나는 수없이 무릎을 꿇었고, 수없이 울었고, 수없이 신에게 되물었다.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요? .. 언제까지 고통스러울까요? .. ”
그렇게 고통의 바다에 무릎꿇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아주 조용한 대답이 들려왔다 “왜가 아니라, 지금이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고통은 벌이 아니라 초대라는 걸. 신이 내게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거나 잊고 있던 본래의 나로 돌아가라고 시간을 주신 거였다.
이것은 이혼에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배신에 대한 복수의 기록도 아니다. 이건 무너짐을 통과해 다시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처럼 무너져 있는 사람에게 조금의 빛, 숨,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가끔 불안하고, 두렵고, 외롭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감정이 내 안에 있을 동안 관찰 하고 잘 흘러가게 두면 결국엔 고요에 닿는다는 걸.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의 선물이었다. 이혼은 내가 내 스스로를 직면해 보고 다시 태어나게 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는 신의 방식이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나의 과제를 풀어가는 여정을 기록한 것이고, 고통의 바다앞에 있는 분들에게 건네는 작은 불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