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나는 그 사람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비난도 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약한 척도 해봤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사라진 뒤 남게 될 재정, 회사, 직원들,
모든 무너짐이 내 손에 쏟아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지켜야 했고, 회사도 지켜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어쩌면 이혼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조용히 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 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절반만 진실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망설인 건 맞지만,
동시에 그건 내 두려움의 핑계이기도 했다.
이혼을 미루는 진짜 이유는 이렇게 많았다.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사회적 시선, 미래에 아이들이 나를 원망할까 두려웠다.
혼자가 될까 봐, 무너질까 봐, 삶을 감당 못 할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이 중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내가 열등감을 느끼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핑계로 내 공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이 더 큰 상처를 입을 거라는 것을.
아빠라는 사람이 밖으로 도는 것을 계속 목격하게 될 것이고,
나는 그들에게 진실을 숨기며 살아야 할 것이며,
그 패턴은 아이들의 가치관을 망가뜨리고
결국 그 사람은 아이들마저 자신의 생존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내 마음속으로 질문했다.
“이 상태가 아이들에게 정말 더 나은가?”
그리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려지는 미래의 그림은 아무리 그려도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혼은 가정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선택이라는 걸.
그 결심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는 공포스러웠고, 불안했고,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아이 둘의 손만 잡고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길이 없고, 지도도 없는 황야를 맨발로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 공포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안전을 주는 유일한 어른은 나 하나뿐이었다.
결국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삶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아이들의 세계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였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이혼’이었다.
가정을 속이고, 더 이상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회피할 곳이 없자 7살, 12살 된 아이들을 보는 앞에서 집을 나가버리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남편, 아빠, 보호자, 가족구성원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무엇인가 중독적이고 어딘가 파괴적인 습관이 몸에 밴 사람으로 더 이상 함께 하다간 내 가정은 썩게 될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니 내가 정말 해야 할 것은 그를 내 가정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망설인 이혼이 결국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이혼마저도 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협의 이혼이 아니라 조정 이혼을 택했다.
왜냐하면 그는 궁지에 몰리면 모든 것을 회피해 버리는 성향으로 그와 사건이 연관된 타인은 결과적으로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과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법적 절차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남편의 상대 여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었다.
그건 단순 분노가 아니라, 아이들이 받은 피해에 대한 엄마로서의 대리인 행동이며, 내 가정 파괴에 동조한 어리석거나 또는 악한 이에대한 법적 대응이었다.
거의 1년의 소송 끝에 나는 100% 승소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 가족을, 내 아이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지켜냈다.
이건 단순한 이혼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지켜내기 위한 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