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막는 두 개의 함정 - 죄책감

죄책감과 두려움의 함정

by 서이든

이혼을 결심한 사람이라도, 그 결심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를 가로막는 감정이 있다.
바로 죄책감과 두려움.


특히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감정은 너무 강해서 거의 마비에 가깝다.


1. 죄책감 — “나 때문에 아이들이 불행해질 거야”


부모라는 타이틀을 단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 또는 못하는 이유는 이거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나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끝까지 버텼다.
그게 엄마의 책임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아이들을 위한 핑계처럼 보이는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사실,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주는 엄마’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내 아이들이 “우리 집은 달라”라고 느끼면 그건 내 실패 같았으니까.

그게 바로 죄책감의 본질적인 함정이다.
죄책감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미움받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의 15년의 결혼 생활은 어땠나?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자만의 양심의 공간에서 물어보자.

우린 어딘가 맞지 않았다.
공감이 없었고,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외계어를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신앙, 가치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우리가 가까워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가톨릭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문화의 뿌리를 이해하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내 세계에서 멀어졌다.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내 행위가 그에게는 그의 본능적인 인종 차별주위에 더 힘을 실어 주었고 점점 더 그에게 그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듯했다.

(참고로, 전 남편은 유럽 사람이고, 한국 사람들이 유럽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결혼 생활 하면서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오는 말들을 들으며 느꼈다. 예를 들면, 그는 종종 한국인들이 Not Civilized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나의 친구들을, 나의 취미를, 내가 좋아하던 음악과 음식, 심지어 내 가족과 한국 문화까지도 폄하했다.
나는 점점 고립되었다. 결혼 생활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고, 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안에는 5년 전의 내가 있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도 지옥 같았다.”

그 문장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도 이미 나는 무너지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원래 결혼이란 그런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참을성이 없고,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우리의 관계가 힘든 거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 내가 괴로워도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내 죄책감의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건 죄가 아니다. 나의 이혼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병든 관계의 정리다.

이건 도피가 아니라 정화다. 나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 고민했고, 남편이 외도를 했을 때마다 말로는 그를 비난했지만 내 탓을 더 많이 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가정을 버리고 다른 세계를 선택했다. 사실 그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인다. 그가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 때문 일거다. 그렇게 사랑 같아 보이는 감정에 중독되길 반복하면서 그때마다 우리 가정을 위기에 몰아넣는 그가 계속 틈마다 외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없어도 어느 정도 형태가 유지되어 돌아가는 가정이 뒤에 있었서 일거다. 그리고 그가 외도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그 버팀목의 역할을 바로 내가 하고 있었던 거다. 값싼 용서를 반복하고, 끝까지 가정을 유지하겠다고 발악하는 내가 사실 그의 중독적 패턴의 양분이 되고 있었다.


이것을 깨닫고 난 뒤로 이혼은 더 이상 ‘죄’가 아니라 내 가족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결혼 상태로 상처받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부재로 상처받는다. 형태가 아니라 공기가 중요했다.


가정이란 ‘같이 사는 사람들의 건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머무는 온도’였다는 걸.

아이들은 이혼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다. 무너진 관계 속에서 방치될 때 무너진다.
그게 진실이었다.


shutterstock_1606606867.jpg


이전 05화눈 위의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