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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e 지영 윤 Dec 25. 2023

폭죽놀이

    불꽃놀이를 좋아한다. 부산, 시드니, 홍콩 등에서는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미국 여러 도시에서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마침 기회가 좋아서 또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구경 다녔다.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그리고 용산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매년 여의도에서 열리는 서울 불꽃놀이 축제를 봤다.


   용산으로 이사한 건 2010년도였다. 이사 갈 준비를 하는데, 지하실 창고까지 딸렸던, 32년 주택 생활이었던 지라 짐이 어마어마했다. 버릴 짐이 턱없이 많은데다 이사 직후 집을 허물 계획이라 가족회의 끝에 거실 바닥에 테이프로 줄을 긋고, 그 선 안에 넣은 것만 챙겨 나왔다. 새집으로 가니 수납공간은 아찔하게 작아졌지만, 짐을 독하게 덜어낸 덕에 실제 활용 공간은 오히려 넉넉해진 듯했다. 부엌의 라디오폰 같은 기기들도 쓸모를 떠나 신기했고, 새로 산 가구와 가전도 모두 너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매일이 파티였다. 

   그러던 중, 하늘이 맑은 어느 평온한 오후, 거실에 모두 모여 노닥거리고 있을 때였다. “쿵”하는 굉음이 들렸다. 순간 가족 모두 조용해졌다. 다시 굉음. 우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서로를 쳐다봤다. 또렷해진 눈동자들. 
    아빠는 잰걸음, 날카로운 눈빛으로 거실의 통창으로 다가가 밖을 살피며 잠깐 있어 보라고 했다. 다시 굉음이 들리나 기다리는데 가슴이 싸했다. 나는 초조하게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어는 ‘한국, 전쟁’, ‘서울 폭격’.

    다행히 전쟁도 폭격도 아닌 그저 우리 가족만의 해프닝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 불꽃놀이 축제 준비였단다. 시간이 좀 지나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을 나중에 교회 봉사모임에서 만났으니, 다름 아닌 용산기지에서 근무하는 미군이었다. 서울에 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외출 중에 그 굉음을 듣자마자 ‘폭격이다’ 생각하고 부대에 전화했단다. 


   어떤 기억은 그런가 보다. 머리에 담아두지 않았는데 몸이 알고 있다. 불꽃놀이를 그토록 쫓아다니며 봤어도 나는 그 소리를 폭격과 연관 지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시각적 요소와 불꽃놀이에 대한 기대감이 배제되자 그렇게 폭죽 소리가 단박에 이라크 바그다드에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거다. 전쟁 중의 폭격 소리를.      

   나는 여섯 살부터 열 살까지 4년 반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보냈다. 이라크는 그 당시 이란과 한창 전쟁 중이었다. 한밤중, 천둥보다 묵직한 굉음과 뒤따라오는 차르르 유리창 소리에 눈을 뜨면 청아한 파란 빛이 침대 발치를 사선으로 드리우고 있었다. 그 쨍한 달빛은 어린 눈을 뗄 수 없도록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자세한 거야 내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있던 4년 동안 폭격은 점점 가까이 왔지 싶다. 어느 날엔가는 한낮에, 폭격소리에 익숙한 귀에도 깜짝 놀랄만큼 큰 굉음이 들렸다. 그때 봤던 것 같다. 아빠의 잰 걸음과 날카로운 눈빛을. 

   그 순간, 아빠는 동생을 안아 올리며, 

  “어, 지금 건 진짜 가까이 떨어졌나 보다. 우리 어디 떨어졌는지 구경하러 가자.”라고 했다.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갔고, 아빠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땅에서부터 피어나는 구름이 있었다. 눈으로 폭격 위치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9년에 개봉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있다. 유대인인 주인공과 다섯 살 어린 아들의 이야기다. 일반 시민에서 유태인으로 낙인찍혀가는 과정이 그려졌고, 그런 후 수용소까지 들어간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처참한 수용소의 환경을 아들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재미있는 미션수행 게임으로 포장한다. 주인공은 끝내 죽고 마는데, 총살당하러 가면서도 자기를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이 아빠가 여전히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 믿게 하려고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와 미소를 지으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 영화, 이 장면을 봤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대피해도 모자랄 판에 아빠가 우리에게 옥상에서 폭탄이 떨어진 장소를 구경하게 한 이유를. 그게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아빠가 어린 자식들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그러모아 한 최선의 노력이었음을.     

   한참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이라크에 대해서는 전쟁 소식이 뉴스를 통해 간간이 들렸다. 그중 하이라이트로는 홍콩 출장 중에 봤던 걸프전 뉴스를 꼽겠다. TV를 보고 있는데, 세계 최초로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전쟁이라고 했다. 이라크였다. 기자는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밝은 빛을 내며 떨어지는 포물선을 폭죽놀이처럼 보여주며, 오해하지 말라고, 저건 군사시설만 정확하게 타격하는 거라고 했다. 정말? 
    명색이 CNN인데, 설마하니 거짓말을 하겠는가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그 후 한참이 지나, 이라크 바그다드의 어느 여인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여인은 천장의 자국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저게 걸프전 폭격 때 첫째 딸의 오른손이 날아가서 붙었던 자리라고. 어디서인가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어릴 적 다녔던 국제학교도 걸프전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했다.     


   2022년 2월 24일, 올림픽 기간부터 말이 나오더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결국 침공했다. 그 당시 뉴스에서는 한 달 된 아기를 안은 남자가 매일 새벽마다 폭격 소리에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런가 하면, 피란을 간 장소에는 휘둥그레 큰 눈을 한 아이들이 올망졸망 무릎을 잔뜩 끌어안고 벽에 붙어 있었다. 벌써 1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고, 민간시설을 대상으로 한 폭격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 뿐 아니라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소식이 전해진다. 
    수많은 사람이 이미 겪은,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을 현실. 그 안에는 폭격 소리에 잠을 깨고, 목숨이 오가는 일상을 살게 된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잠시나마 두려움 없는 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용감할 수밖에 없을 부모들이 있음을 안다.      

   그제 저녁 한숨과 분노의 목소리를 SNS에 끄적여 놓고는 올리려다 말았다. 새삼 아는 척하기에는 너무 관심을 안 두었던 터라 염치가 없어서. 그래서 그 대신, 그 부모들을, 그 아이들을, 그저 잊지 않으려 한다.


<<운현궁 그 사람>> 제 6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회 수필 57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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