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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소유설(所有說)

매원수필문학상 수상소감

by Jaye 지영 윤

이십여 년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면 즐겼어도 좋았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출장길에 나를 마중 나온 명품 차를 탄다거나,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로 승진한다거나, 내가 영향력이 있는 줄 착각한 이들에게 과분한 친절을 받은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그럴 때마다 경계심을 품었던 듯하다. 내게 ‘허락해 주신 성공’이라 생각하고 즐기기는커녕 부담스러워하고 불안해하기도 했고, 내가 가는 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던 까닭에 이건 내 게 아니라며 되레 마음의 거리를 애써 더 두곤 했다.
이번에 매원수필문학상이 주어진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고도 가장 먼저는 기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낯익은 마음이 올라왔다. 이 영광스러운 상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이 상을 왜 주셨는지 여러 날 생각이 복잡해 마음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을 걸었다. 이게 어떤 마음인지, 이번에도 역시, 내 게 아닌지.
소란스러운 마음이 영 가라앉지 않아 답을 찾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 매원 박연구 선생의 글과 문학계의 평론 등을 대출 신청해 놓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30분은 유난히 길었다. 며칠간 책을 읽으며 독서란, 시대를 넘어 선학을 만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글을 통해 매원 선생을 만나보니 모든 글감이 현시대의 ‘결’과 맞지는 않지만, 현대 수필의 글쓰기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마주친 「꽃나무 소유설(所有說)」에서는 그만 조용한 도서관에서 큭큭 웃고 말았다. 대학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에.

대학 시절, 각종 사회문제를 조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적 대안을 고민하도록 독려한 교수님의 수업을 좋아했다. 교수님은 비상한 지성 못지않은 독특한 성격이었는데, 제자들을 어찌나 격의 없이 대해주셨던지, 수업 듣던 철부지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면 선생님 흉을 보곤 했다. 그중 백미는 꽃다발 사건이었다. 우리 중 하나가 제자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교수실을 방문했는데 다른 이 하나가 꽃다발을 들고 교수님에게 감사 인사를 왔단다. 오 분이나 지났을까? 금세 또 다른 제자가 결혼한다며 들어오자, 선물 준 이가 번연히 보는 앞에서 방금 받아 내려놓은 꽃다발을 예비 신부에게 주신 것. 준 사람 마음은 나 몰라라 하고 실용적으로 즉각 행동을 한 게 참 선생님답다며 한참 웃었다.
이 일이 생각나게 한 「꽃나무 소유설」은 매원 선생이 ‘수필의 아버지’처럼 존경한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정원 이야기에서 비롯된 글인데, 화원(花園)을 하던 금아 선생의 제자 하나가 스승의 정원에서 꽃나무를 키워 팔았단다. 제자로서는 꽃을 넓고 볕 좋은 데서 키워 팔 수 있으니 좋고, 스승은 꽃나무를 보니 좋았단다. 세월이 흘러 스승이 집을 팔게 되었을 때, 그렇다면 그 집의 꽃나무의 소유권은 어찌되는 것인가, 궁금했다나. 현명하게도 금아 선생의 제자는 꽃나무를 집의 일부로 알고 샀을 새 주인에게 넘겼다. 꽃을 틔운 공(功)은 스승에게 넘긴 채. 그걸 두고 매원 선생은 당신 역시 이사를 한다면 선물 받아 심은 꽃나무를 파내어 가는 대신 선물하는 심정으로 두고 가겠다고 했다. “선물받은 것이라고 언제까지나 자기 소유라고만 주장하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가 싶다”라며.

이 글을 비롯해 매원 선생의 수필을 읽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됐다. 좋은 수필을 쓴다는 건 사람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작업이라는 말,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표현하는 문학이 수필이라는 말, 일상사에서 순간순간 접하는 경이의 순간이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때라는 것 등에서, 나도 모르는 새 이미 따라 걷기 시작한 길인 성싶어서.
『매원수필전집』을 덮고 도서관을 나서며, 연서를 쓰듯 수필을 쓴다는 매원 선생의 가르침이 글을 왜 쓰는지 고민하는 내게 오랫동안 길잡이가 되겠구나, 깨달았다. 이번에 허락하신 매원수필문학상은 선물로 주시는 꽃나무인 줄 잘 알고 감사하며 받으면 되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래, 선물로 받은 것이니 잘 가꿔서 선물로 남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어라? 제법 가락을 갖춘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데, 한 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어째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는 거다. 꽃나무를 키우는 일은 어디 쉬운가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밭, 분주하기 짝이 없는 내 정원에서 꽃나무가 잘 자랄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도서관을 다시 흘끗 돌아보던 중에 묘안이 떠올랐다. 나도 꽃나무를 나의 스승, 박상률 작가님의 정원에 심으면 되지 않겠는가! 다만 한 가지 또 불안한 건, 심어드린다 해도 곤란하다고 안 받겠다시면 어찌한다? 발을 동동거리다 보니 결심이 섰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스승이 깊이 잠드신 한밤중에 몰래 가서 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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