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2일의 기록
요즘 말 좀 한다는 아들. 전화를 거는 재미를 급 느꼈는지 "누구누구한테 전화할래"라는 말을 종종한다. 뭐 대부분 아빠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 네 분.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것이 태반.
오늘도 오후 늦게 전화가 와 다짜고짜 "아빠 다음에 아빠랑 부침개 먹으러 가자. 다음엔 아빠랑 같이 가는 거다. 약속이야"라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를 외친다. 그리고 정말 뚝 끊는다. 시크한 녀석.
예정일을 달랑 일주일 남긴 만삭의 엄마를 졸라 광장시장 나들이를 다녀온 게다. 먼 길이었지만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고 나름 재미있었나 보다. 대신 엄마는 더운 날 엄청 고생했겠지.
재미있는 일은 꼭 엄마랑 아빠랑 '닌니(본인을 지칭)랑' 셋이 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나랑 놀자. 내 방에서 어디 가는데? 어디 가는데?"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문 앞을 '턱'하고 막아서던 녀석.
처음엔 "회사 다녀올게" 하면 회사가 뭔지 몰라서 아빠를 놓아주었는데, 이제 아들에게 '회사'라는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나가서 한참 안 들어온다'는 의미인가 보다.
결코 부정적인 곳은 아닌데 부정적인 인식을 줄까 하여 우회적인 표현을 찾으려 했지만 차마 "돈 벌어올게"라거나 "장난감 사려면 다녀와야 해"라고 할 수는 없고, "지지 버리고 잠깐 집 앞에서 아저씨 만나고 올게"라고 둘러대고 집을 나선다.
결국 아빠를 놓아주지만 아들의 눈빛은 '아무래도 회사에 가는데...'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올 때면 미안한 마음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다음엔 꼭 아빠랑 하는 거다. 약속이다"라는 말을 강조하며 전화를 끊는 아들의 말은, 아빠가 하루 종일 모든 것을 같이 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살며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과정이다. 곧 오빠가 되는 걸 아는지 대견하다 녀석. 그나저나 "다음에"라고 약속한 것들이 쌓이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다음에 같이 하자"의 뜻이 "아빠랑은 못하는 거니 넘어가자"가 되지 않게 말이다.
여하튼 오늘도 오후에 전화받고 문득. 주저리주저리다. 결론은 오늘도 잠들기 전에는 아빠 못 본다. 못난 아버지를 둔 내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내일 아침에 보자. 오늘도 야근에 회식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후딱 놀고 또 바짓가랑이 잡자.
브런치를 열며 - 2014년 8월 12일이면. 둘째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의 일이다. 시간은 훌쩍 흘렀고 아들은 유아기를 벗어나 '어린이'(미운 7살?)의 단계에 진입했다. 가끔은 남자 냄새도 난다. 스스로 물어보니, 당시의 다짐은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수도 없이 "다음에"라며 약속한 일들은 여전히 "다음에"다. 아들은 더 이상 아들은 바짓가랑이를 잡지 않는다. 대신 "오늘은 회사에서 일찍 와? 긴 바늘이 어디에 있을 때 와?"라고 묻고, "아빠 주말에 출장 가? 안 가면 나랑 놀자. 아빠 휴가가 언제야?"라며 예약을 한다. 삶은 조금씩 변모하고 있지만, 미안함은 결코 변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