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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ul 01. 2024

4개월의 베트남어 도전기

공이 탄생시킨 우리들의 우주

당연하게도 온 지 4개월 만에 베트남어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전히 내 발음은 바보(ngu)와 잠자다(ngủ)를 멋대로 오고 갔다. 슬퍼하는 내게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넌 빨리 언어를 익힐 거라고 말해줬다.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 풋살을 하니 자연스럽게 언어가 늘 거라는 거였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이 말은 반만 맞았다.          






깝(주장- captain의 베트남식 발음)이 내게 외친다.     


“룩 앳 미(Look at me)!”
 

본인에게 공을 패스하라는 뜻이니 곧이곧대로 듣고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예쓰예쓰. 대강 대답한 후 이대일 패스를 성공적으로 주고받는다. 결국 골 넣기에 성공하면 깝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말한다.


“유 두 굿(You do good).”



룩앳미와 유두굿이라. 언어의 퇴화가 뚜렷하게 보이는 대화다. 그러나 내가 하는 영어는 틀린 영어이지만서도 똑똑한 영어였다. 살아보니 영어에 약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했다. 하나, 동사는 기본형만. ate, thought 같은 단어 대신 eat, think 사용하기. 둘, 어휘는 초등 중학년 교과서에 등장하는 정도만. go, eat, look은 되지만 memorize, participate, courage는 글쎄. 분명 어느 때보다도 영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정작 내 영어실력은 퇴화 중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베트남어를 내뱉었으나 솔직히 그중 진짜 베트남어가 몇 퍼센트나 됐을까. 내 말하기 실력이 늘었다기보다 그들의 듣기 실력이 향상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테다. 내가 제멋대로인 억양으로 소리를 뱉으면 가장 연상 능력이 좋은 친구가 그게 무슨 뜻인지 유추해서 전체에게 공지해주는 식이었다. 애초에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았으므로 점차 모두가 내 말을 이해해 갔다.




유독 훈련 불참자가 많은 날이 있었다. 덕분에 한국인의 비율이 커진 날이었다(어쨌든 15명 중 하나와 6명 중 하나는 다르니까). 그날 훈련은 나를 배려해 영어로 진행됐다. 눈치챘겠지만 국제 훈련 느낌이라기보다 10개 단어만으로 대화하기 챌린지에 가까웠다. 룩, 예스/노, 오케이, 킥, 굿 정도의 단어들로 한 시간 반을 보냈다. 신기한 건 그래도 별 불편함이 없었다.









웨아 데아 로우. 아따 쥑이네, 라는 사투리라고 친구들에게 배웠다. 분명히 내가 이 말만 했다 하면 그 지방에 사는 친구가 그렇게나 기뻐하곤 했다. 하지만 dynamic 팀을 제외하면 밖의 누구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마디로 Dynamish, 우리들만의 언어인 셈이다.

베트남어와 영어, 한국어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0.8개 국어의 조악한 결과물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언어였다. 언어는 하나의 우주다. 같은 단어를 공유할 때 같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우리만의 우주가 생겼다. 이 우주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길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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