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장래 Jul 23. 2021

명이나물

당신의 가슴에 박힌 음식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매일 먹는다.

그렇기에 음식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다.

그 이야기가 나름의  가슴에 박혀있는 것이라면, 그 음식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아빠에게는 졸업식 날의 짜장면이, 엄마에게는 보름달 빵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그게 명이나물이다.


명이나물은 그 이름만 들으면 취나물, 참나물과 형제 뻘인 것 같지만 장르? 가 다르다.

다른 나물들은 한정식 집에서 밥과 함께 나오지만 명이나물은 고깃집에서 활약한다.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는 풀떼기이나 한 입 먹어보면 특유의 맛이 고기 맛을 돋운다.

그 맛의 비결이 양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지 고기와의 조화에 있어 명이 나물을 능가하는 풀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명이 나물은 비싸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설정된 사람인 것이지, 왜냐고 묻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사람은 알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학년 선배의 점심 제안을 결국 승낙한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에 그러자고 말한 것은 순전히 거절을 하지 못해서다.

점심에 대체 누가 고기를 구워 먹는단 말인가. 그것도 대학생이!

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깃집에 내키는 대로 갈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돈도 없었지만 고기 말고 다른 것을 먹자고 할 용기도 내게 없었다.

당분간은 점심때 기숙사에서 햇반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조용히 생각하며 따라갔다.

다니던 대학교 주변은 대학가보다는 직장인들의 근무지에 더 가까웠고, 가격 역시 그에 걸맞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기를 시키며 기숙사에 참치 캔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나름의 예상 범위 안이었기에 나름의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가면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명이나물 때문이었다.

고기와 함께 그렇게도 좋아하던 명이나물이 나왔다.

하지만 쉽게 젓가락을 대지 못한 것은 오로지 그 뒤로 보이는 ‘명이나물 2000원’ 때문이었다.    


괜한 심보인지 명이나물에 고기를 싸 먹을 때면 고기가 그렇게 달았다.

부모님과 갔던 식당은 무료로 더 줬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리게 떠올랐다.

하지만 명이나물이 없어도 고기는 먹을 수 있었고, 내 재정상태를 보건데 그게 맞았다.

문제는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명이나물 추가할까? 맛있잖아.”

“... 그래요!”    


내가 어떤 사람인가. 언니의 제안에 나는 자동적으로 그러자고 했다.

아마 언니가 고기를 1인분 더 시키자고 했어도 그때의 나라면 그래요,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흰색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채 새로이 식탁에 놓인 명이나물을 씹으며 착잡함을 느꼈다.

나는 바보인가. 왜 거절하지 못하는가.

쿨할 거면 진짜 쿨하던가 왜 2000원에 이리도 심란해하는가.

그래, 2000원이다. 고작 2000원이야. 스스로를 달랬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참 별로였는데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었다.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언니의 카드는 시원하게 긁혔고, 난 조용히 계산대 옆 소프트콘 기계를 작동시켰다.

내가 불쌍해 보인 걸까. 표정에서 티가 난 걸까.

아니면 이건 단순히 대한민국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유교문화일까.

내 표정이며 눈빛을 되짚어 보았지만 언니가 밥을 산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너무도 초라했기에 나름의 아픔으로 가슴에 박혀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굳이 2000원을 내고 명이나물을 추가해서 먹고 싶지는 않다.

아빠가 늘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곱빼기로 시키시고는 항상 남기는 것과는 다른 결말이다.

하지만 명이나물이 리필되는 집에서는 아귀마냥 먹는 자신을 발견할 때,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직까지도 명이나물은 가슴에 박혀있는 추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