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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Aug 03. 2021

미운 아이 태우(1)

세상 모든 태우에게 바칩니다

동물과 인간이 대화를 못하고 회색빛 하늘이 평범해진 어느 날, 인성초등학교 3학년 3반에는 태우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태우가 어떤 아이냐고요? 아마 지나가는 인성초등학교 학생에게 물어본다면 망설이다가도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음, 키가 작아요. 뚱뚱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태우는 반에서 두 번째로 작았고, 몸무게는 선생님보다도 많이 나갔죠. 여러분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태우를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조금만 더 설명해볼게요. 터질 듯한 볼살 때문에 태우의 눈은 쥐 발가락만 했어요. 들창코 덕에 콧구멍이 그대로 보였는데, 코딱지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바로 티가 났죠. 

어디 그뿐인가요, 태우는 공부도 못 했어요. 받아쓰기만 하면 ‘괜찮다’를 ‘괘찬타’, ‘않아요’는 ‘안아요’라고 썼지요. 구구단을 못 외우는 건 물론이고요. 3학년인데 그럴 수도 있죠. 좀 뚱뚱하고 못생기면 어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태우와 짝꿍이 된 사람은 웃음기가 싹 사라지곤 했고, 반에서 놀이를 할 때 아무도 태우를 부르지 않았죠.


아이들이 태우를 싫어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체육시간에 태우 때문에 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태우는 느리고 게임 규칙도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했으니까요. 다른 모둠활동에서도 도움이 하나도 안 됐고요. 게다가 태우는 수업시간에도 몇 번씩 옷에 손을 넣고 몸을 긁어대곤 했다고요. 몇몇 아이들은 친절하게도 매일 몸을 씻으면 가렵지 않을 거라고 태우에게 일러줬어요. 태우는 아토피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안 씻은 사람처럼 보이기만 했어요.


“쟤 분명히 오늘 안 씻었을 걸.”


태우가 어딘가를 긁고 있을 때면 나는 어젯밤 샤워를 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누군가가 한마디를 하곤 했어요.     










어둠 속에 있어도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사람의 장점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요. 태우는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아이였어요. 이 부분에 있어서 태우의 마음보는 그 누구보다 넓다고 할 수 있었죠. 쫑긋한 귀의 토끼, 볼록한 볼의 다람쥐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동물이지만 멋진 곡조를 뽑아내는 귀뚜라미, 매끈한 모습의 바퀴벌레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적으니까요. 친구들이 삼삼오오 경찰과 도둑을 하러 뛰어나갈 때 태우는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았어요. 흙이며 이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곤충들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아야지만 보이는 세계라니. 그건 정말 멋있는 일이었죠.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누군가 태우의 모습을 보고 말했어요. 태우는 꼽등이 한 마리를 팔 위에 올려둔 채 놀고 있었죠. 그 둘이 누구인지, 왜 잘 어울린다는 건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지요.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태우의 귀도 새빨개졌어요. 태우는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아니야, 너는 나와 달라. 너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잖아. 네 갈색 껍질이 얼마나 근사한데. 태우는 속으로 꼽등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이 말을 꼽등이가 들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너도 대단해. 우리 가족이 모두 올라타도 끄떡없는 힘을 가졌고 나보다 빠르게 뛸 수 있는 걸. 하지만 둘은 사람과 동물이 대화를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었어요. 태우가 얼른 꼽등이를 화단에 내려주면서 만남은 끝이 났지요.


할아버지라면 부모님이 이런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고 하시면서 그럴수록 더 힘을 내라고 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얼굴도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떠올리는 일은 그다지 기운이 나지 않았어요. 태우는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상상 속 부모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습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살아는 있어? 나 힘든데 안아주러 오면 안 돼?’     








태우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미술이었어요. 적어도 미술시간에는 틀렸다고 비웃음을 살 일이 없었으니까요.

“오늘의 주제는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누군가는 유튜버를, 어떤 아이는 사육사를 그렸어요. 선생님은 돌아다니면서 어떤 그림이든 칭찬해 주셨죠. 태우의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태우야, 이건 어떤 직업을 그린 걸까요?”

“장수풍뎅이예요.”

“음....... 태우의 꿈은 장수풍뎅이 연구원일까요?”

“아니요.”

“그럼 장수풍뎅이는 왜 그린 걸까요?”

“.......”

태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요. 이번 미술시간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었나 봅니다.


“선생님, 태우는 왜 아무거나 만들어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이 들어왔어요. 질문은 곧 늘어났지요.

“맞아요. 그리고 싶은 거 그리는 시간 아니지 않아요?”

“태우는 왜 맨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요?”


선생님은 모두를 위해 근사한 거짓말을 선택했어요.

“태우는 곤충 연구가가 되고 싶대요. 관찰하고 싶은 곤충으로 장수풍뎅이를 그린 거고요. 지금 질문하는 사람들은 다 그렸나요? 다른 사람 그림에 관심 갖는 걸 보니 다 한 것 같은데?”


반은 금세 조용해졌고, 태우는 곤충 연구가인 척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야만 했어요. 그건 정말 싫은 일이었죠. 미래의 나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태우는 종이에 키도 크고 마른 모습의 어른을 그려 넣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되길 조심스럽게 그렸습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태우는 길 한복판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어요. 그대로 놔둔다면 지렁이의 미래는 뻔했죠. 태우는 지렁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읏차.”

태우는 지렁이를 손에 올렸어요. 건너편 풀밭에 놓아줄 생각이었죠. 그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아이들이 태우를 발견했어요.


“태우 너 손에... 그거 뭐야?”

“지렁이다!”

“윽, 징그러.”

수많은 말들이 태우를 덮쳤어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중, 다른 말이 태우에게 날아왔어요. 앗, 이번 말은 꽤 세네요.


“너, 그 지렁이도 먹게?”

좁쌀만 하던 태우의 눈이 완두콩만 해졌어요. 머릿속은 하얘지고 빨개졌지요. 누군가 톡 치기만 해도 주룩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어요. 태우는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거 아니야.”

“하하하, 점심이냐, 점심?”

“지렁이가 불쌍해!”


태우는 울음을 참으며 뛰어갔어요. 야속하게도 몇 발자국 뛰지도 않았는데 체력은 금방 동이 나고 말았지요. 태우는 정말이지 모든 게 싫었어요. 나쁜 말을 하는 애들이 밉고, 그런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도 못마땅했지요. 지렁이는 왜 하필이면 눈치 없게 길바닥에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지렁이는 씩씩거리는 태우의 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가 버려. 너 때문에 친구들이 다 나를 놀리잖아.”

지렁이는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죠. 그저 태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냐, 사실 너 때문은 아니야. 원래 다들 나를 싫어하니까.”

모두가 나를 싫어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더욱 눈물이 나는 말이었어요.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못생겨서? 몸을 많이 긁어서? 생각나는 이유들은 많았고, 그래서 더 우울했어요. 태우는 지렁이가 흙 속으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식혔어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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