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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Aug 04. 2021

미운 아이 태우(2)

세상 모든 태우에게 바칩니다

오늘은 인성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영을 배우는 날이에요. 초등학교에서는 생존수영을 배우는 것이 필수가 되었고, 덕분에 태우는 수영장에 가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어요. 몸이 물 근처에 가기만 해도 간질거렸거든요.

물이 싫은 이유는 더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태우를 물에서 온 아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낚시를 갔다가 바구니에 담겨진 채 떠내려 오는 태우를 발견하셨대요.

부모님이 나를 버린 곳. 태우는 바다며 강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샤워를 할 때면 매번 몸을 벅벅 긁는 태우를 보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거참 이상타. 분명히 물에서 온 아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태우는 더더욱 탈의실 밖을 나가기가 싫어졌어요.

스스로가 봐도 거울에 비친 모습은 참 별로였어요. 개구리처럼 빵빵하게 부푼 배, 수영 모자를 쓰니 더욱 커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왔어요.


‘아침을 먹고 오지 말걸......’


놀리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태우는 흘끔대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지요.

태우는 한숨을 크게 쉬고 수영장으로 나갔어요.


 수영장에 들어서자 태우의 온몸이 간질거리기 시작했어요. 등을 긁고 싶어서 미칠 노릇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몸을 긁으면 친구들이 놀릴 게 뻔했어요. 태우는 간지러울 때마다 주먹을 꽉 쥐며 참았어요.


“자, 다들 잘 봤죠? 이제 물에 들어가서 직접 해봅시다. 1번부터 차례대로 들어오세요.”


수영 선생님의 설명이 끝날 때쯤, 태우는 온몸을 벅벅 긁고 있었어요. 참을 수 없게 가려웠거든요.

이대로 물에 들어갔다가는 놀림을 당할 게 뻔했어요.


“시호야, 네가 먼저 들어가면 안 돼?”

“빨리 들어가. 너 차례잖아. 난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

“안 되는데...”

태우는 난처한 마음에 몸만 긁어댔어요.


“시호야, 그냥 네가 먼저 들어가. 쟤랑 얘기하지 마.”

“그래, 쟤 원래 저러잖아. 선생님이 왜 그랬냐고 물어보시면 우리가 너 편 들어줄게.”

“그럴까? 장태우, 이번만이다.”

시호가 먼저 물에 들어가고, 그 다음 사람도 물에 들어가고.... 어느새 모두가 물에 들어가고 태우만 남았지요.


“학생, 얼른 들어오세요, 다른 학생들이 기다리잖아. 물이 무서워서 그래요?”

“선생님... 몸이 너무 간지러워요.”

“애들아, 태우는 또 안 씻고 왔나봐.”

“그러니까. 진짜 더러워. 선생님, 태우는 들어오지 말라고 해요.”


태우는 자신을 흘겨보는 눈초리를 느꼈어요. 서러워서 눈물이 났죠.

“그런 거 아니야. 나 잘 씻는단 말이야.”

“그럼 왜 자꾸 몸을 긁는데? 씻고 오면 안 그래.”

“아토피여서 그런 거란 말이야!”


태우는 서러운 마음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어요. 담임선생님께서 얼른 태우에게 달려왔죠.


“그만!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라고 했죠?

방금 그 말들, 배려심이 하나도 없는 말이었어요.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도록 해요.”


담임선생님은 얼른 태우를 데리고 수영장 의자로 왔어요.

“아직 물에도 안 들어갔는데 왜 간지러울까. 걱정이네. 태우야, 친구들이 놀려서 많이 속상했죠?

선생님이었더라도 슬펐을 것 같아요. 친구들이 나빴네.”


선생님의 말에 기분이 조금은 풀리려고 했지요. 선생님은 태우를 흘끔 보시더니 이야기를 계속 했어요.

“그런데 물에 안 들어가면 체육 수행평가는 노력 요함이 될 것 같은데... 있다가 괜찮아지면 물에 들어가 보는 건 어때요?”


앞에 말씀만 하시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태우는 이럴 때에도 공부 이야기만 하는 선생님이 야속해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태우의 속도 모르고 마음껏 울라며 자리를 비켜주셨죠.

엄마와 함께 살기만 했어도 이렇게 아토피에 걸리고 뚱뚱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빠도 싫었지요. 대체 둘은 어디에 있을까요. 왜 나를 버렸을까요.


‘혹시 내가 너무 뚱뚱하고 못생겨서 버린 걸까?’


그 생각이 들자 태우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어요.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태우의 얼굴은 흠뻑 젖고 말았어요.








“오늘 학교는 어뗬어?”

“좋았어.”

할아버지의 질문에 태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만날 똑같은 질문이에요.


“수영은 할만 혀?”

“아, 몰라! 수영 짜증나.”

“선생님한테 다 들었어. 너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그런 걸 또 왜 말하느냔 말이에요. 태우는 선생님도 싫었어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신경 쓰지 마.”

“내일은 한 번 들어가 봐.”

“싫어. 난 물이 싫단 말이야!”

“왜 소리를 질러. 그러면 내일도 울고만 있게? 그게 뭐여.”

“싫어, 싫어, 싫어, 싫어!”


태우는 울면서 싫다는 말만 하고 또 했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했지요. 할아버지는 기가 찬 얼굴로 태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마디 하셨어요.


“싫으면 말어 이눔아. 그래도 학교는 가. 가서 질질 짜든 몸에 물을 찍어바르든 니 맘대로 혀.”

“......할아버지, 난 왜 엄마가 없어? 아빠도 없구.”

“대신 넌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있잖어. 할머니는 이제 멀리 갔지만 할아버지가 있잖여. 할머니랑 할아버지 없는 애들도 얼마나 많은디. 감사하고 살어.”


난 엄마가 보고 싶어. 태우는 말을 삼켰지요. 이 말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하면 안될 말 같았어요.

“너는 물에서 온 아이여. 그러지 말고 한 번 물에 들어가 봐. 그래야 나중에 느이 엄마아빠도 만나지.

물에서 온 아이인디 물에는 들어가야 부모님 찾아볼 거 아니여.”

할아버지의 말은 듣기 싫은 말이었어요. 하지만 물에서 온 아이, 엄마아빠를 찾으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 는 말은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다음 날 태우가 결국 물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꼭 친구들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어요. 선생님께서 물에 안 들어갈 거면 같이 수학문제집을 풀자고 해서도 아니었어요. 태우가 수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태우의 마음에 남은 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지요.


‘너는 물에서 온 아이여. ........ 물에는 들어가야 부모님 찾아볼 거 아니여.’

‘내가 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태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어요. 수영장에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 때마다 몸이 가려워졌어요.

하지만 심장이 쿵쿵 뛰는 울림이 더 컸지요.


“뭐야, 쟤 물에 들어오는 거야?”

“싫은데...... 물 더러워질 것 같아.”


수군거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어요. 태우는 조심스럽게 물속에 발가락을 넣었고, 종아리를 담갔고, 마침내 가슴까지 적셨습니다.


‘뭐야, 생각보다 할 만 하네.’


태우는 씩 웃으며 머리까지 물에 넣었어요. 그 때였어요. 온몸이 물속에 잠기자, 태우의 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몸이 너무 가려워! 이게 무슨 일이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태우는 목을 긁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말랑말랑한 살 대신 매끈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태우는 놀라서 자신의 몸을 살폈어요. 태우의 팔에는 희고도 푸른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지요.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당황한 태우가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더 깊은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네? 뭐라고요?”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가셔야 변신할 수 있습니다.”

태우는 얼떨결에 머릿속의 목소리를 따라 수영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밖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선생님, 아이들 모두 빠질 듯 커다랗게 눈을 뜬 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푸른 빛 비늘, 길쭉한 몸, 매끈한 꼬리. 그건 마치......


“요, 용이다.”


선생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용이었어요. 그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었지요.








물속 태우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한 번도 수영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몸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였어요. 온몸에는 비늘이 덮였고 힘이 솟기 시작했지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이제 가시지요.”

머릿속 목소리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무슨 준비요? 간다니... 어딜요?”

“이제 용이 되어 저희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 뵙고 여의주를 받으시면 됩니다.”

“네? 용이요? 제가요?”

“요새는 환경오염이 심해서 어릴 때에는 인간세상에서 덕을 쌓으며 지냅니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나 준비가 끝나면 용으로 승천한답니다.”

“제가 용이라니...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날아오르셔야죠. 하늘로요.”






“여기요, 빨리요, 빨리!”

선생님은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어요. 112와 119중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지 간신히 결정을 내렸고요, 신고를 하려고 보니 핸드폰이 탈의실에 있어 열심히 달려갔지요. 전화를 걸고 나서도 소방대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아니, 어디가 부러진 게 아니라 몸이 아예 변했다니까요. 마치 짐승처럼요. 우선 빨리 와보세요.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선생님은 답답함에 몸부림치며 일단 와보라는 말만 몇 번을 했어요. 마침내 경찰 한 명이 도착했습니다.


“아니, 왜 경찰이 와요? 뭐요, 취한 거 아니냐고요? 하, 우선 와보세요. 보시면 알게 될 거라니까.”

선생님은 경찰을 데리고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경찰은 두 눈이 동그래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요.


“이제 제 말 믿으시겠어요? 어서 119불러요 119!”








“곧 인간들이 몰려올 겁니다. 이제는 얼른 날아가셔야 합니다.”

“어떻게 나는지도 모르는 걸요. 그리고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꼬리를 있는 힘껏 밀어보세요.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용으로 태어나셨으니까요.”


마침 문이 열리고 소방관과 경찰들이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자, 이제 빨리. 꼬리에 힘을 주세요!”


쏴아아. 엄청난 물소리와 함께 태우는 물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멍하니 용을 쳐다보기만 했지요. 태우는 자신을 향한 눈빛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고, 그 중에는 존경심과 부러움도 있었습니다.

태우는 더 이상 모두가 꺼려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찬란한 태양빛에 비늘은 번쩍거렸고, 길쭉한 몸은 힘차게 꿈틀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태우는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렁이 대공입니다.”

사람도 용으로 변하는 마당에 공중에 떠있는 지렁이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죠. 태우는 그 지렁이를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길에서 구해준 지렁이 맞죠?”

“네, 맞습니다. 그동안 태우님의 따뜻한 마음씨를 항상 지켜봤지요.”

“그럼 뭐해요. 전 공부도 못하고 뚱뚱한걸요.”

“용에게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할까요. 용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이 맡은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이지요. 오늘 같은 날 용으로 변하려면 평소에 많이 먹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나는 뭐가 문제일까,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중요치 않았다고 생각하니 태우는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저... 잘한 거죠?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요.”

“그럼요. 하느님도 다 보셨을 겁니다. 이제 하느님을 만나러 올라가시면 됩니다. 세상 모든 곤충을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되실 거예요.”


내가 모든 곤충을 돌본다고? 어쩐지 곤충들이 그렇게 예쁘게 보이더라니.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파란 하늘 속은 들어갈수록 시원했습니다. 장난감처럼 보이던 건물이며 자동차는 손톱만해지더니 이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뚱뚱하다고 구박받던 기억도 그만큼 작아졌습니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태우는 용이었으니까요.








쏴아아아. 빗소리가 나네요. 할아버지는 엉기적엉기적 창문을 닫으러 갔지요. 태우가 사라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태우가 용이 되었다는 헛소리만 하는데, 그게 어디 말이나 되나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지요.

하지만 이상하죠, 점점 그 말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 모기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일어나야하는 시간이면 매미가 알람처럼 우는 것도 그랬습니다. 그뿐인가요, 저번에는 집 앞에 나뭇잎 뭉치로 4글자가 놓여있었습니다.

 ‘할 아 버 지’


빗소리에 창문을 닫으려던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멈췄습니다. 메뚜기며 여치가 후두둑 튀어올랐거든요. 그 자리에는 나뭇잎 넉 장이 놓여있었습니다. 곤충들이 갉아먹었는지 이파리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을 나뭇잎만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그려 알긋다, 중얼거리며 씩 웃었습니다. 곤충들이 갉아먹은 구멍이 꼭 이렇게 보였거든요.


괘 찬 아 요.






*작가의 말*


치타에게 하늘을 날라고 다그치는 일은, 돌고래가 나무를 못 탄다고 비웃는 일은, 불공평하고도 의미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잘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모범답안은 ‘그런 것은 없다’일 것입니다. 우리는 태우에게 잘할 필요가 없다고,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말하겠지요. 그런데 정말 아니던가요?


학력과 외모에 대한 차별을 멈추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눈앞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태우가 용이 되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살았다면 태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 자신이 없습니다. 적당히 평범하게 살았다고 상상하렵니다. 


적어도 제 동화 속에서 태우는 용이 되어 멋지게 살아갈 겁니다. 많은 곤충들을 구하면서요. 무엇이든 이루어지고 꿈꿀 수 있는 곳이 동화이기에, 세상 모든 태우에게 이 동화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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