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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Apr 08. 2024

때로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

공안과 부딪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요란한 아이돌 복장을 한 댄스 동아리 오빠들도 인상 깊긴 했지만, 그 해 고등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귀신의 집이었다. 이과반 전체가 합심해 운영하는 귀신의 집은 입소문을 타며 학교 축제 전부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귀신의 집이 얼마나 공포스럽든지 간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킹콩을 보고도 악몽을 꾼 사람이다. 공포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스트레스로 죽어간다. 왜 돈과 시간을 들이며 그런 고문을 당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돈을 준대도 거들떠보지 않을 공포 체험장에 결국 들어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친구들 때문이었다.


A는 말했다. 이과반 친구들이 이거 만드느라 한 달 전부터 고생한 거 뻔히 알지 않느냐고. 옆에서 상자 자르기며 장보기를 도운 사람으로서 모르지 않지만 이미 영업이 성공적으로 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B는 신이 나서 외쳤다. 공포물이 짱 좋다고.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개인적인 기호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대 1인 상황에 민주시민으로서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3인 1조가 되어 공포의 집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달랐던 첫 번째, 생각보다 공포의 집 수준이 높았다.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큰 기대가 없었는데 막상 어두컴컴하고 시뻘건 교실 안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그럴듯했다. 생각 못했던 두 번째, 친구 놈들은 나보다 더 심각한 쫄보들이었다. 죄다 비명을 지르면서 등 뒤에 쪼그리고 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공포 영화 잘 본다며. 귀신의 집 재밌겠다며! 어이가 없어서 따졌으나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그들에게 이성적인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 괴기스러운 인형과 목이 늘어져라 교복을 붙잡고 있는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허망하게 몇 분간 서 있었다. 결국 숨겨진 열쇠를 찾아 교실을 탈출하는 일은 전부 내가 다했다(나쁜 놈들). 겁이 많은 나를 이겨낸 최초의 순간이었다.









후진국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굳이 그런 식으로 불러가며 비하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말이지 베트남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분야가 있다. 부정부패 정부다.




한국에서 서류 발급을 원한다면 동사무소에 가면 된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차례가 오고, 필요하다고 쓰여 있던 증빙 자료를 내면 서류가 나온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모든 일이 절차대로, 합리적으로 진행된다. 주민센터 직원 마음대로 방문 일정을 옮기거나 청구액을 바꿀 수는 없다.



베트남의 경우 그런 게 없었다. 공안을 만나고 싶다면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 경찰서 운영시간과 상관없이 공안의 시간이 가능해야 한다. 일정이 잡혔다고 방심할 수 없다. 가져오라던 서류도, 시기도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 갑자기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탐관오리에게 착취당하는 농민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땀주(외국인의 임시 거주 신고)를 받으러 경찰서에 갔다가 분노와 억울함 범벅이 된 채 생각했다. 이번주 수요일까지 땀주를 직장에 내지 못하면 비자 발급이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초조했다. 벌써 두 번째 엎어진 공안과의 만남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문제는 이놈의 공안이 말을 바꿨다는 데에 있다. 애초에 요구했던 내용과 달리 추가 서류를 달라는 게 아닌가. 물론 그런 서류가 뚝딱하고 나올 리가 없었고, 부동산 업자와 공안의 설왕설래가 전화기를 통해 이어졌다.



이 자식들 돈을 대체 얼마나 받아먹으려는 거야. 정말이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래의 나라면 하다못해 일그러진 얼굴로 욕이라도 씨부리며 툴툴댔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쯔억은 나보다 두 살 어린 젊은이로, 순전히 직장 상사인 삼촌의 부탁(을 빙자한 명령) 때문에 경찰서에 동행했다. 일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며 공안의 거절, 집주인의 기다리라는 말이 엉키기 시작하자 쯔억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보스에게 한마디 들을 것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런 쯔억을 보자 출처 모를 인자함이 샘솟았다. 의젓하게 씩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위로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랐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배려심과 의연함 같은 건 애초에 내게 내재된 덕목이 아니었건만 이렇게 멋진 언니 같은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결국 그날 땀주는 받지 못했다. 공안이 마음을 바꾸는 기적이라던가 부정부패한 그들을 꾸짖었더니 뉘우쳤다던가 하는 전래동화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갑을 더 열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가당치도 않은 대쪽선비 정신이 발동한 바람에 몇 시간 동안 서성이다 그냥 집에 돌아와야 했다. 4월에 계획된 여행은커녕 비자 만료로 쫓겨날 수도 있게 된 상황이었으나 쯔억을 위로하고 콜라 한 캔을 사와 내미는 성숙한 내 모습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여기기로 했다.






쯔억과 마셨던 콜라

     






타인이란 존재는 참 신기하다. 누군가를 눈물 쏟게도, 화가 나게도(망할 공안) 만들지만 공포를 이겨내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짜증을 누르고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적을 선사하는 것도 사람이다. 분노든 기쁨이든 간에 감정의 원천은 결국 사람. 인간은 참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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