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담하면서 드는 생각

by 단단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오는 분들이 많다. 그 긴장감이 첫 만남에 나를 휘어 감는데 그 느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관계를 이렇게 방치하거나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상담소에 찾아오신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일테니 (사실 상담이 그렇게 못 갈 데 가는 거 아니잖아요...) 너무 반갑고, 귀한 마음이다. 진작에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부와 결혼, 가정생활에 대해서 왜 이렇게 우리는 모르는 거 투성이 인 걸까. 할 만큼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나는 커플 사이에 한 사람이 된다.



내담자들마다 참 다양하다. 어떤 분들은 나보고 마법을 부리라(상대방을 바꿔놔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항의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상담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우리가 바뀌겠어요?)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 분들은 무엇을 기대하실까?



솔직히 말하면 상담사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례는 맡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자기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담사의 자기 보호는 곧 상담의 건강함과도 연결된다. 상담사를 간 보기 위해서 시종일관 눈에서 힘을 풀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 그분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또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되면 상담사도 내담자와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나와 내담자가 서로 인연이 되려면 되는 거고, 아닌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모든 내담자를 어떻게 다 받겠나.



상담소에서 처음 커플을 만날 때, 이 분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 듣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짙은 원망이 느껴진다. 풀이 죽은 쪽을 보고 있자면, 안쓰럽고 불쌍하다. 그런데 화를 내고 비난하고 있는 쪽도 안쓰럽고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둘 다 표현방식이 다를 뿐, 관계 속에서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니까. 그럼에도 둘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게 아니다. 나도 내 견해라는 게 있고, 내 선호라는 게 있어서 말이 참 조심스러워지는 자리다. 그렇다고 내내 애매한 태도로 있을 순 없으니까, 상담사의 진솔성도 중요한데, 이 역시 내담자와 신뢰관계가 탄탄할 때에야 가능하다. 진짜 어렵다.



부부와 가족체계에 분명 어려움을 주는 외부적인 요인이 있고, 이 외부적인 요인에 대처하는 내부적인 요인이 부적응적이어서 쌓여온 세월이 길다. 오랫동안 참고 답답한 상태로 지내다가 이 자리에 오셨다. 제삼자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으니 조금 가벼워졌다는 말씀도 하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여전히 막막하지만 기댈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씀도 하신다. 나는 그냥 털어놓기만 하는 대상이고 싶지는 않다. 물론 털어놓는 것도 감사하고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전문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계속 공부하고, 노력한다.



우린 얼마나 만나게 될까, 얼마나 진전을 보게 될까.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새로 시작하는 상담이 생길 때마다, 정말 더 알 수 없다는 마음이 든다. 그분들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오셔서, 자신과 관계를 돌아보고 변화를 만들어내실지 나도 모른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비춰드리고 조력할 뿐이다. 모든 게 나한테 달린 게 아니라는 걸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언제 완성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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