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의 제자리

제자리에 있을 때 평화롭다

by 단단

4개월 만에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내심 반가웠다. 기다렸나 보다. 서로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둔 채 시간을 보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부모와 단절되어 지내는 시간이 괴로웠던 건 평범한 일상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우선은 해야 할 이야기는 제쳐두고 일상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했다. 손주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이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을 때 행복했다. 내가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나 보다.


마트에 가서 부모님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받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낄 때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는 닥친 상황들을 정리해 나가느라 힘들었고, 이제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도 이제야 감정이 식어지고, 평정심을 되찾은 거니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우리가 회복력이 있는 가족이어서 감사했다.


엄마는 아빠랑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나에게 오랫동안 힘들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는 부부의 불화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제야 엄마가 지난 십몇 년 동안 내가 했던 말들을 이제야 본인 입으로 시인하셨다.


지난 십수 년 간 서서히 나는 이미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었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린 시절 늘 불안정했고, 어딘가가 고장 난 것 같은 느낌은 이제 더 이상 엄마아빠 탓도 아니었다. 내가 나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독이면서 살아갈 만큼 성장했으니까.


오히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두 분의 서사와 앞으로의 날들이 더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두 분이 감당하셔야 할 현실적인 어려움과 관계의 문제를 두 분이 잘 풀어가시면 된다. 그렇게 하시도록, 한발 물러서서 내 삶을 살아가면 될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말자.


부모님이 함께 오셨다가, 함께 가시니까 나는 그냥 '자녀'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아빠는 아빠고, 엄마는 엄마고, 나는 자녀일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킬 때가 가장 평화롭다. 부모님이 끝까지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책임지며 사셨으면 좋겠다.


가족은 때때로 서로 간의 거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내 이야기가 단절로 끝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자녀로서 자리를 지키고, 부모님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서 평화와 안정을 찾는 것은 모든 가족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가족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