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미해결 된 과제가 있다.

여보, 함께 이 과제를 끝내볼까

by 단단



나는 남편에게 한참을 열을 내면서 이야기를 했다.

화가 났다. 억울했다. 시달렸다. 지쳤다.

언제까지 내가 당신의 기준에 맞춰야 하냐고,

나는 이렇게 나를 넓히고 있는데

당신은 대체 뭘 노력했냐고,

왜 나한테만 얻어내려고 하냐고

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나는 언성이 점점 높아졌고 남편은 멍 하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야 언성이 낮아지고 질문하고, 가만히 들을 수 있는 드디어 그런 상태가 되었다. 내 앞에 내담자가 있다고 최면을 거는 게 조금 효과를 본 것 같다. "알지 못함의 자세로"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정말 왜 그러나.

왜 나를 시달리게 하나.

나를 왜 이렇게 지치게 할까.

대체 언제 만족이 될까.'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남편의 내면아이가 보였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 거야.

정말 해소되지 않은 마음에 불안이 있는 거야.'


그날 우리는 우리가 다뤄가야 하는 그 불안을 만났다.






남편은 불안, 나는 시달림 회피



그에게는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갔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남편은 돌도 되지 않은 아기였을 때,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댁에서 지냈었다. 얼마 전 남편하고 누워서 이야기하다가 어린 시절에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거야.' 생각하며 발길이 닿는 대로 시골길을 걸었던 그때의 기억을 나눈 적이 있다. 오래전 그날을 회상하게 된 남편도 자신이 짠했고, 듣는 나도 마음이 많이 아렸다. 누구나 마음속에 안쓰러운 아이가 살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사랑은 불안정한 것이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에 자꾸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이 없으니, 아내만은 온전히 그의 편에서 한결같이 있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는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총 13년을 나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고, 자타공인 애처가로 살아왔다. 그게 애착을 공고히 형성하려는 인간의 본능이었을까.


반면에 나는 통제가 심한 아버지 즉, 불안이 높은 아버지와 매우 독립적이고 고집이 센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아빠는 술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랬고, 엄마는 일로 아빠를 회피했다. 불안한 부부 사이에서 첫째 딸로 살면서 불안을 몸으로 흡수하며 시달렸다. 나는 부모님처럼 살지 않으려고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결단을 했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우리 집에 불안이 틈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없었다. 내 딴에는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거니까 으레 그 정도 수준에서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부족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남편의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깊이 공감하지 못한 채 '그래 네가 원하니까 해준다.' 정도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편의 불안이 잠재워질 리가 있을까.



요즘 들어서 엄마가 아빠를 외롭게 했던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이 중요해서 ‘ 남편을 외롭게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편이 자꾸 나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게 꼭 우리 아빠와 엄마 관계 같기도 하고) 그전에는 남편이 자기가 불안해서 나한테 피해를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에게도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불화의 고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미해결과제, 같이 끝내볼까


누구나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미해결 된 채 남아있다. 그 욕구는 미해결 상황 속에서 억압되어 짜증, 분노, 의심, 두려움의 감정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신의 미해결 된 문제를 알지 못한 채 부부는 계속 보이는 행동을 문제 삼아 갈등하고, 싸우며 감정적으로 골이 깊어진다. 그리고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상대방 탓만 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먼저는 나를 돌아봐야 한다.



가장 먼저 부부는 서로를 향한 애착의 욕구를 인정해야 한다.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편하게 수용해 주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내를 원하고. 우린 서로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갈등할 뿐이다. 결코 상대방이 싫어서가 아니라.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가?) 그러고 나서는 반복되는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과는 다른 시도들을 해보아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서 알지 못함의 자세로 질문하며, 상대방의 미해결과제를 알고 해소할 수 있도록 배우자가 돕고 지지해 주는 것이다. 결혼은 서로 도우며, 서로가 성숙해 가기 위한 판이다.



남편은 자신의 불안을 자각했다. 그래서 불안하면, 사랑을 떠보지 말고 느껴지는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럼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받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과는 좀 다르다. 전에는 나에게 그 불안을 잠재워달라고 요구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반은 나에게 기대고, 반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알게 되고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번 일로 나의 시달림으로부터 회피하는 패턴을 자각했다. 30년 동안 아빠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왜 나의 모습을 통해 불안하고, 서운했었는지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문제라는 것을 아니까, 이 관계 패턴도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내가 조절하면 되지! 효능감이 생겼다.


그래서 한 주 동안 너무 평안하게 잘 지냈다.

남편이 오늘 저녁에 아이들에게 ‘한주동안 엄마랑 사이좋게 잘 지내서 감사하다’라고 했는데,

이하동문! 그건 나도 마찬가지.


정말이지,

갈등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성숙해 가는 결혼 생활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