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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Aug 15. 2023

부모님과 나의 삼각관계

더 이상은 가운데 끼지 않을 거야.


정말 힘든 날이었다. 아침에 아빠에게 계속 문자가 왔다. 엄마 때문에 화가 난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듯 생생한 문자였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를 말리라는 걸까, 아니면 엄마랑 더 이상 못살겠다고 이번에는 진짜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역시나 엄마는 아빠의 입장에 전혀 공감하지 않고,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30년을 넘게 부부로 살았지만,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지 않은 부부, 가정을 함께 이끌어가는 동지애가 없는 부부는 자녀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나의 부모님은 부모로서는 최선을 다하셨지만, 부부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정서적으로 소원한 부부는 돈, 친구, 취미, 알코올, 자녀 등에 집착하면서 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채워나간다.


부부가 접점이 생기지 않아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아무리 해도 안되고 답답하고 화가 나니까 내게 연락이 오는 것이다. 이게 삼각관계의 형성이다. 아빠의 감정이 나에게 묻어서 나도 엄마를 미워하게 된다. 엄마와 담쌓게 되는 것이 아빠가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일이 흘러간다. 다른 쪽에서는 엄마가 내게  엄마의 주장하는 것을 잘 들어보라고 한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자녀는 점점 지쳐간다.


나는 급기야 방으로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질렀고, 눈앞에 엄마,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고 혼잣말로 쏟아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오랜만에 뒤집어지도록 분노했다. 부모님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끼어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이 불쾌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느꼈지만 표현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결혼한 지 10년째가 되어도 난 아직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정 불화가 내 책임이 아닌데도 나는 부부 사이에 끼어서 엄마를 위로하거나, 아빠를 위로하거나, 아빠를 질책하고 타이르는 역할을 했다. 자녀가 하면 안 되는 일을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꾸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불안을 함께 공유해야 가족인 것 같은 가족 규칙이 있었다. 가족이라면, 함께 나눠야 하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정말 그럴까? 정말 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가족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된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가족 내의 규칙과 신화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자녀는 본인의 가정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맞지만, 한국의 가족문화 속에서는 K-장녀의 역할, 부모에 대한 충성, 자녀에게 헌신한 부모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 각자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좋은 것을 주셨지만, 부부 갈등의 불안까지 함께 주셨다. 이제 와서 원망한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다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의 삶을 잘 지켜나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방비 상태로 있으면 10년이고 20년이 지나도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부모님 사이에 끼어있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나의 자리와 부모님의 자리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당연히 지금 내가 속한 가족이다. 이제 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부모님께는 두 분이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씀드리고, 내가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받아들여주시는 분 들 이어서 관계가 많이 정리가 되었다.


조금씩 나의 자리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나와 부모님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을 세워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것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부모의 어떠함도 받아들여지고, 감정적으로도 덜 영향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다 단단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고작 “부모처럼 안 살 거야 “를 벗어나서, ”나답게 살 거야 “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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