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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Jun 12. 2023

끝끝내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

남편은 절대 알 수 없는 아내의 영역- 전업맘의 고뇌



어제 대화하다가 오죽 답답했으면, 지금 이 상황이 'T와 F의 차이'인가 하면서 MBTI 툰을 찾아봤다. 분명 저 사람이 나를 엄청 사랑하고, 나를 엄청 지지하는데도 (내가 그걸 모르진 않아) 이렇게 말한다는 게. 내가 그냥 T를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질까 싶어서. 아니, 내가 공감을 바란다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바로 안다. '너 지금 공감 안 해줘서 그런 거야?'라고 나의 기분을 알아챈다. 맞다. 나 삐쳐있었다. 삐쳐있었다는 워딩도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더 말하고 싶지 않아서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F라는.



'그래, 이건 (남편으로서는) 정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야. 끝까지 나를 이해받기 어려울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같은 시간, 한 집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나의 삶과 남편의 삶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고, 주관적 세계와 경험과 해석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간혹 부딪히는 부분은 '나에 대한 평가, 시선'에 대한 부분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력단절여성으로 전업주부로 살았던 시간에 나는 자기 일 + 경제적인 소득이 없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힘들었다. 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줄 나도 모를 정도로 솔직하게 꺼내보이지 못했던 시절이다. 내가 '내가 발휘되는 일을 너무나도 하고 싶다, 나도 경제활동을 해서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마음에 대해서도 나의 타이밍이 올 거야, 이러다 계속 이렇게 살면 어쩌지를 오가며 마음 다잡으며 아이를 양육하는 시간을 살아냈다.






어제 이야기했던 것은 '일과 소득'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좌절을 나눈 건 아니고 마음 발견 + 소망이 버무려진 내용이었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내가 엉엉 울었다고. 나름 그게 어제의 명장면이었고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쨌든 내 말을 다 들은 남편은 "너는 너를 너무 작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성향 차이인 것 같아. 나는 크게 꿈을 가져야 거기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 어쨌든,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하고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해야 되는 거야. (갑자기?) 예를 들어 말해볼게. 그 강사양성스쿨 지원했으면 어떻게든 하려고 해야지. 내가 일찍 퇴근하고 노력하면 되잖아(일찍 퇴근해 준다는 뜻인 듯)" 이런 내용을 말했는데,



"저기요? (이때부터 발끈했구나) 저 지금 진짜 시간 쪼개서 살고 있거든요. 오빠는 내가 뭘 하는지 모르나 보다. 그래 일일이 다 말 안 하니까 모를 수 있어. 근데 나보고 조금 더 빡빡하게 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강사양성스쿨을 내가 가려면 오빠가 일주일에 두 번 7시 전에 와야 해. 애들한테도 양해를 구해야 하고, 진짜 간절히 원하면 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스케줄 딱 잡아버리기에는 나는 고려할 게 너무 많은 거야. 그걸 의지가 약하거나, 시간을 설렁설렁 쓴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지."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서로 기분 나쁠 수위를 넘지 않으려고 둘 다 엄청 노력했다. 그런 기류가 느껴졌지만. 어쨌든 뾰로통하게 잠들려고 하는데 남편이 기분 안 좋냐며 물어온다. 그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또 말을 하게 됐지.






"나는 네가 그때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엥 진짜 그런 내용이라고) 너 그때 이거 저거 하고, 네가 너 자신을 끈기 없다고 이야기했었잖아. 그때 네 입으로 말해놨는데 왜." 이렇게 말한다. 내 아픈 부분을 팍팍 건드리면서.



"그때는 내가 꿈을 가질 수가 없었어. 육아만 하는 시간 동안, 사회랑 단절되어 있을 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뭘 잘할 수 있나.' 이런 자존감이 낮아지고, 효능감이 바닥이 나있었다고. 그때는 한 스텝 앞을 나아가는 것도 어려운 시절이라고. 그때의 나를 이해해 달라는 말이야. 내가 아이만 키우던 시절을 후회한다는 것도 아니고, 오빠가 회사생활하는 게 쉬웠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작게 생각하고 싶어서 작게 생각하겠어? 진로를 찾느라 이리저리 시도하고 방황하는 걸, 끈기 없는 성격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야. 오빠는 모르겠지, 회사 생활 계속하고, 통장으로 돈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왔잖아. 그럼 절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백 프로 이해해 달라고 말 안 해. 그냥 그때 내가 꿈이 작고, 끈기가 없던 걸 자꾸 그런 식으로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거야."




남편은 나를 평가하려고 한 거 아닌데 왜 이렇게 방어적으로 구느냐고 하며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답답해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내가 방어적으로 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당신의 말에서 내가 그냥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 해명과 변명과 설명을 하는 거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받고 싶은데 끝끝내... 나를 '더 욕심내면, 열정가지면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 '끈기가 약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정말로 있잖아요.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좀 알아주세요.그리고요, 육아하던 시절에 내가 작아져있고 싶어서 그랬나.그때 내가 더 열정 쏟지 않은 게 내 성향이라거나 자기 자신을 너무 몰라서 그렇다거나.. 그렇게 찢어지게 낮아진 마음이 지금 나를 또 살아가게 하는데 이제는 뭐, 그래 그 이해는 내가 나에게 충분히 해주는 걸로 퉁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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