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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Sep 27. 2023

이번 명절에는 시댁에만 갑니다.

K-장녀의 반란, 안녕 엄빠!


나는 어떤 장녀인가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끼어있는 장녀이다. 부부불화가 생겨나면 나와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엄마와 한편이 돼서 아빠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클 수밖에 없었던 장녀. 아빠에게 옳은 소리를 따박따박하는 장녀. 아빠를 타이르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마치 아빠의 보호자 같은 장녀였다. 아빠가 기대면 마음이 약해져서 다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불안하고, 통제가 심했다. 나는 25개월에 동생을 예뻐하던 속 깊은 장녀, 어리광 한번 안 부리고 클 수밖에 없던 책임감, 의젓함이 똘똘 뭉친 장녀였다.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딸, 의젓한 딸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서 내 애칭은 ‘희망’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희망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부모님이 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 것이 기뻤다. 지금은 ‘희망이’이라는 별명이 싫다.


가족 문제 해결사였던 장녀,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책임감이 너무 커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런 장녀는 아니었다. 나는 20살이 되던 해, 대학을 타지로 진학하여 집을 떠났다.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고 싶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애써온 장녀이다. 부모님의 말이라면 죽은 시늉이라도 하는 그런 딸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께 옳은 말을 하는 불편한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는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장녀다.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추석을 앞두고 친정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 혼자 생각을 백번 한 것 같다. 주변에 물어보면 ‘굳이 안 가도 된다는’ 사람과 그래도 ‘명절은 가야지’ 하는 사람 반반이었다. 후자는 부모님이 서운해할까 봐 가야 한다는 착한 부류의 장녀였고, 전자는 ‘너 자신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독립적인 장녀였다. 그렇담 나는? 딱 그 중간에서 고민하는 장녀였다. 진짜 애매하다. 남들에게 물어봐서 뭐 하나, 내가 결정해야지 하면서 명절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역시 나는 독립적인 장녀야” 그래놓고, 일주일 뒤에 나를 만나려고 찾아오겠다는 엄마의 지성에 감동(?)하여, 내가 추석에 가겠노라 했다. 착한 장녀로 뒤집히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보다 더 쉽게 이런 결정을 뒤집는 분이 계신다.



바로 아빠의 연락이었다. 내가 추석에 가겠다고 하고 하루도 안되어서,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친정을 잊고 살라고, 집이 개판이 되었으니 여긴 잊고 너 혼자 행복하게 잘 살으라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절하는 말을 할까? 실제로 나를 안 보고 살겠다는 걸까? 둘이 싸워놓고 왜 나한테 그러지? 부부의 문제를 왜 나에게 던질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더 열받는 건, 다 해결되었으니 이제 와도 된다는 엄마의 연락이다. 부부상담을 받을까 한 데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센터 소개도 해줬는데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 부부상담은 이제 필요 없단다. 하루 사이 많은 진전이 있었단다. 아빠가 앞으로 엄마한테 안 그러겠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와도 된단다. 나는 안 믿는다. 다 해결되었다는 말?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지 신기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친정에 가고 싶다고 매달린 적도 없다. 애초에 내가 안 간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이제 다 해결되었으니까 오라고? 안 간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약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이게 문제다.) 그러면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 2시간도 안돼서 다시 전화 와서, 10월에 있는 가족행사에 오라고 전화를 한다. 내가 지금 명절에 엄마, 아빠를 보러 가냐 마냐 고민한다고 했는데 엄마의 동생(삼촌)의 딸의 딸의 돌잔치를 내가 왜 가야 하는데? 진짜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엄마…. 이러지 말자….’ 했더니, 알았어 그럼 뚝!




나는 가족과 어떻게 지내길 원하는가?

나는 가족이 모두 각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서로 너무 깊게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부 싸움을 하는 부모는 제발 독립적으로 싸웠으면 좋겠다. 동생은 동생의 할 일을 잘하고, 나는 내 할 일을 잘하고 그렇게 지내면 된다. 동생과 부모님이 서로 분리되지 못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내 삶이 아니니까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나는 서로 영향을 덜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결혼하고 몇 년은 친정 근처에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지금 이 거리가 딱 좋다. 아니 조금 더 멀어져도 상관없다. 이게 건강한 건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거리두기 하는 게 잘하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많다. 분명한 건 같이 붙어있을수록 힘들어지긴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정서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어서 (그놈의 카카오톡, 특히 단톡방은 폭파시켜야 해) 엄마가 어떤 일을 했는지 들으면 부아가 치밀고, 아빠가 어떻게 행동했다고 하면 깊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내 가족,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남편이 있어서 살만하다. 살만한 정도가 아니라, 많이 든든하고 감사하다. 나는 부모님과 거꾸로 살고 싶었다. 사이좋은 부부가 되고 싶고,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가족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의 반대로 살고자 하는 집착도 내려놓았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하는 일을 찾으며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퍽 위로가 되었다.


안녕 우리 가족!


헬로! 안녕하기를 바라. 그리고 이제 바이! 원가족으로부터 넘어오는 폭풍은 우리 가족을 침범하지 못해. 나는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에서 반짝반짝 빛날 거야. 부디 엄마아빠도 빛났으면 좋겠어. 멋진 이야기를 남기며 살아주면 좋겠어. 시간이 많이 지나면 엄마가 이해되는 날, 아빠가 이해되는 날이 오려나. 내가 나이가 많이 들면 다르게 해석되는 게 있으려나. 그때가 언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올진 모르지만 너무 애쓰지 않을 거야. 이건 내 책임이 아닌 거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지치지 않을 만큼만 할 거야! 안녕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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