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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May 02. 2024

엄마가 처음 집을 나갔다.

정신 좀 차리라고. 이 엄마 괜찮은 건가요?


육아를 하면서 나의 민낯을 마주하는 순간이 많다. 밖에서는 그럴듯해 보이고, 이해심도 많고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속도 깊은 내가 왜 집에서만, 특히 아이들 앞에서는 숨길 수 없는 민낯을 드러내고 마는 걸까. 엄마 되기란 나의 민낯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를 수용하고, 다독거려 줄 수 있다면, 그건 엄마 쪽에서는 성장이 된다.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다.


하도 난리 쥐+랄 법석을 떨어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자 (아이가 그래봤자 얼마나 그러겠냐고 하는데 상당히 견디기 힘들다.) 내 쪽에서 한계가 왔다. 얼굴이 벌게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머리가 쪼여오는 듯한 느낌. 몇 초내에 큰 일 날 것 같이 조마조마하다 결국 내가 집을 나갔다. 그리고 나서 얼마 못가 집에와서 밥하는데 킹받는다.


딱히 이런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육아하면서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음? 애가 미울 수도 있구나?‘ 충 to the 격. 나 이래도 되는 건가. 나는 그냥 자식이 미울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유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다. 10년을 같이 살아보니,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역시 자식 문제 앞에서 엄마는 약자니까.


폭발하는 감정은 추스리기가 어려워서 가급적이면 안 터지고 싶다. 그런데 육아하면서 자주 터진다. 자주 터지다 보니, 점점 회복력도 좋아진다. 괜찮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화해하고, 좋아지는 것이 다행인 양 생각하면서도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을까 봐 두렵다.


아이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아이가 나한테 함부로 대할 때 화가 난다. 화가 날 때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서 황당하여있는 내 모습이 마치 바보 같다. 큰 아이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다. 매사에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다. 힘겨루기를 하면서, 나에게 계속 딜을 걸어온다. 반면 나는 딜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많이 맞춰주고, 결국 억울해하고, 터지는 양상이다. 영 모양 빠지는데… 분명 내가 원한 엄마의 모습은 아닌데…


엄마로서의 권위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련의 모습들을 보면 내가 무시받고 있는 엄마인 것 같아서 화가 나게 되고, 맥이 빠진다. 하지만, 엄마의 권위는 사랑에서 온다.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용서하는데서 엄마의 권위가 있다. 나는 그런 엄마다. 흔들리지만, 버젓이 버티는 엄마. 밉지만 다시 사랑하고, 끝까지 용서하는 엄마. 아이도 아니까 저렇게 난리버거지 피우는 것, 그래서 결론은 나는 엄마의 권위를 잘 지켜내고 있는 엄마다. 아 이래도 괜찮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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