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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익 Oct 04. 2023

엄마를 잃어버렸습니다.

비로소 내가 성장했다는 것


자녀는 부모에게 보이지 않게 충성한다. 어릴 때는 부모의 논리에 따라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이라면 다 옳고, 절대적으로 들리는 시기가 있다. 부모가 나의 보호자일 때는 그랬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충성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유지되면 곤란하다. 그것은 ‘나’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이며, 부모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소리이다. 자녀는 때가 되면 엄마의 사랑을 잃어버려야 한다.


엄마를 이상화하고, 엄마와 정서적 쌍둥이 K-장녀였던 나는 아직까지 온전히 엄마를 잃지 못했다. 엄마에게 계속 나를 사랑해 주길, 돌봐주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가 아니라면, 서운해하고 있었다. 엄마가 지혜롭게 선택하고, 계속해서 나의 존경받을만한 사람이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길고 지난한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건, ‘엄마와 나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었다는 걸 알았고, 그건 내가 결코 얻으려고 한다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엄마는 그냥 한 개인이었다. 나와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 사람이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엄마를 잃어버려야 했다. 나는 엄마와 분리되고 ‘내 것’을 지켜야 만들어가고, 지켜야 한다. 나의 경계를 건강하게 세워야 한다. 내 감정, 내 생각, 선택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면 된다. 그리고 엄마의 생각과 선택에 대해서 엄마가 책임진다면 우리 사이는 꽤 괜찮은 것이 된다.


어느 순간 엄마가 내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내가 보면 못마땅한 것들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건  내가 성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성인자녀가 엄마와 여전히 같은 것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꿈꾼다면 그거야 말로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게 빠르게 바뀌는 흐름 속에서 환갑의 엄마가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적응적이란 법은 없었다.


엄마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내 뜻대로 바꾸려고 해서도 안된다. 엄마의 삶을 그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나는 생각, 감정, 행동만을 조정할 수 있다. 그것만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지나치다. 엄마의 삶은 그때 거기서 최선이었던 것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한테 미안하다.


나는 오늘 엄마를 잃어버렸다. 그건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소리기도 하다. 이제는 엄마와 다르게 관계 맺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해받기만 바랐던, 돌봄 받기 바랐던 딸이 아니라 엄마보다 훨씬 더 큰 존재가 되었으니, 엄마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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