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덕후의 우프 도전기
내 별명은 ‘왕돼(지)’다.
함께 살고 있는 반려인의 별명은 ‘돼돼’.
별명에서 드러나듯 우리 가족은 돼지를 가장 좋아한다.
하이힐을 신은 듯 우아하게 서있지만 얼굴엔 귀여움을 가득 담고있는 외모를, 쫑긋 세운 귀를 정신없이 펄럭이며 개구리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는 돼지의 소리를, 우리는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 내가 가장 먼저 취재하고 싶어했던 곳은 충북 음성군에서 경축순환농법을 하는 ‘자연목장’이었다.
자연목장의 목부인 이연재, 장훈 부부가 기르는 행복한 돼지의 영상과 사진은 예전부터 우울한 순간에 꺼내보게 되는 힐링포인트였다.
한국에서도 우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이들 부부.
그런 자연목장에 가면 취재와 우프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니. 우프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 우프에는 특별히 돼지 애호가인 반려인도 휴가를 내고 함께 참여했다.
그렇다. 이건 우프라 부르지만, 사실은 왕돼와 돼돼가 돼지 농장에서 3일동안 노동을 빙자해 덕질한 이야기다.
자연목장 목부 이연재, 장훈 씨와 아들 건명. © 이연재 목부 페이스북
정말 너무 와보고 싶었어요! 저희 돼지 정말 좋아하거든요.
자연목장에 도착하자 마자 호들갑을 떠는 나를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훈 목부.
첫눈에 그가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함께 점심을 먹은 뒤 우리가 익숙해졌는지 그가 말을 건넸다.
“사실 돼지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걱정 했어요. 혹시나 여기 오셔서 상처 받으실 지도 모르니….”
대화를 나눌수록 나는 그가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훈 목부는 아내인 이연재 목부와 결혼 전 함께 동물권에 관한 다큐를 보고 먹거리와 귀농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 남편인 장훈 씨는 결혼하기 3년전인 2010년 부터 주말마다 귀촌 예정지인 충북 음성에 내려와 농사일을 배웠고, 아내 연재 씨는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장 담그는 것 등 먹거리에 대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 농사를 배우던 시기에, 아예 농사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자연의 시간에 맞춰 방울토마토, 상추 이런 걸 심어봤어요. 그걸 먹어보는데 너무 신선하고 맛있는 거예요. 마트에서 상추를 사면 냉장고에 두어도 금방 무르잖아요. 그런데 직접 기른 상추는 따서 냉장고에 두고 잊고 있다 2~3주 뒤에 발견했는데도 너무 신선하게 그대로 있는 거예요. 거기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방울토마토도 땅에 떨어지면 부패가 되는 게 아니라 말라 비틀어져요. 그걸 보며 이렇게 키워야 하는게 맞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죠.
“또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관행으로 고추를 심으셨어요. 저희는 멀리 떨어진 땅에 고추를 2m 간격으로 심어 봤고요. 할아버지는 비닐로 멀칭하고 촘촘히 심으셨는데 소독도 했는데 탄저가 오는 거예요. 그런데 넓은 간격으로 풀이랑 같이 키운 우리 밭은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농사짓는 거 아니’라고요. 그런데 소독도 안 했는데 탄저병도 안 생기더라고요.뿌리는 목질화 되어서 쉽게 뽑히지도 않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맞구나, 생각했죠. 깻잎도 어릴 때 먹던 건 향 때문에 먹었는데 도시에 살 땐 그 향을 거의 못 느꼈거든요. 근데 노지에 풀과 경쟁하며 키우면 향이 굉장히 진해요. 어릴 때 먹었던 그 향이 나요.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예요.”
목장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채소 농사를 짓고 싶었다는 두 사람이 목장을 하게 된건 또다른 깨달음 때문이었다.
“지금은 축사 땅이 포슬포슬한데, 처음에 저희가 왔을 때는 딱딱한 운동장 같았어요. 여기 나는 풀은 쑥하고 망초대 같은 땅이 척박할 때 자라는 것들만 있었어요. 저희가 돼지를 분양을 받아와 키우면서 건강한 퇴비를 밭에 뿌리니까 여러 풀들이 자라나더라고요. 그 풀을 다시 돼지에게 주며 (생태가) 순환되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돼지 분변은 풀들이 먹고,풀이 자라면 돼지가 먹고. 중간에 사람이 끼어 있는 거죠. 채취해서 따 먹고 음식으로 먹고….”
그 고민은 지금같은 자연순환형 목장으로 귀결되었다.
8년 전부터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삶 속에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목부 부부.
그들의 고민과 목장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자, 이제 사료 만드는 거 보세요. 같이 사료 만들고 밥 주세요.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어느덧 돼지도 밥 먹을 시간이 됐다.
킁킁, 커다란 양동이를 덮어놓은 포대를 열어내자 무언가 발효되는 것 같은 시큼한 냄새와 곡물이 잘 발효되는 냄새가 창고 안에 가득 번진다.
장훈 씨가 하루 전에 돼지의 소화를 돕는 미생물과 유황을 사료에 잘 섞어 만들어 놓은 먹이다.
미생물이 어찌나 강한지, 덮어놓은 두꺼운 포대가 우글우글하게 변했다.
나는 목부의 권유에 따라 먹이에 손을 깊숙히 넣어봤다. 발효가 진행되고 있어 따뜻했다.
이 따끈따끈한 발효식을 먹이통 가득 싣고 돼지들에게 출발.
먹이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돼지들은 사람의 동선에 맞춰 달리기를 시작한다.
“꿀꿀, 꿱꿱, 끼이이익!”
신나서 펄쩍펄쩍 뛰는 돼지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어떤 녀석은 먹이를 먹다가도 사람의 동선을 쫓기도 하고, 담장 너머 서커스 구경하듯 난 듯 펜스에 걸터서서 바라보기도 하는 녀석도 있다.
한 녀석은 먹이를 줄 수 없을 정도로 먹이 통 앞에서 공중부양같은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게 하루에 몇 번씩 겪는 일상일테지만, 돼지가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웃으며 기다려주는 목부.
그가 돼지를 대하는 태도 역시 도시 생활에 지친 우리에겐 큰 힐링이 되었다.
돼지가 식사를 마치자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하는 장훈 목부.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농장을 구경시켜 준다.
목장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일도 별로 안 한 우퍼들에게 목장 주변을 돌며 자신들이 키우는 소와 닭을 소개해줬다.
아직 어린 송아지가 이따금 우리를 탈출해 옆 밭의 복숭아를 따 먹는 바람에 난처했던 경험과 목장이 내려다 보여 목부가 가장 좋아한다는 핫스팟까지.
농부는 목작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5년간 목장을 운영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우리가 생에 최초 경험한 우프 첫날의 일정이었다.
자연을 경험하면 ‘꿀잠’ 잔다는 것이 어느 여행기에서나 등장하는 클리쉐지만, 이날만큼은 목부 부부가 돼지 쿠션으로 꾸며놓은 침대에서 우리는 정말 꿀잠을 잤다.
우리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돼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말과 태도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목장 주인장 부부.
그들을 만나 모든 것이 충만한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 헬로파머
이아롬 기자 arom@hellofar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