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덕후의 우프 도전기
그새 정 들었는데…
처음 해보는 목장 일에 좌충우돌하는 사이, 벌써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만나기 전부터 살가웠던 이연재 목부와 달리, 처음에는 인사도 데면데면 하며 낯을 가리던 장훈 목부.
그런 그가 이틀동안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들었다’ 말해주니 왠지 뭉클했다.
실제로 우프를 해보니 2박3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고 아쉬움이 커 왜 우프코리아가 우퍼에게 2주라는 시간을 권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직 성격이나 취향을 파악 못한 돼지도 많고, 목부의 아들 건명이랑도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 모든 것이 아쉬웠다.
“자, 우리 복숭아 가지를 같이 정리해 볼까요?”
헤어짐에 대한 감상에 잠긴 것도 잠시. 오늘은 오늘의 할일이 있다.
바로 전정이 끝난 복숭아 가지를 잘라 정돈하는 일이다.
잘 정돈된 복숭아 가지는 잘 말린 뒤, 겨울에 목부 가족의 난방용 장작으로 쓰인다.
목부의 지침에 따라 전정용 가위로 몇시간 복숭아 가지를 자르며 반복해서 손바닥을 자극하다 보니 어느덧 손바닥 한가운데에 물집이 잡혔다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다 보니 힘들다기 보단 즐거운 마음이 더 컸다.
대화를 나누던 사이 장작으로 쓸 복숭아가지가 잔뜩 쌓였다. 사진에 나온 만큼을 두어번 정도 트럭에 실어 날랐다.
“두 분 덕에 올 겨울이 정말 따뜻하겠어요. 겨울에 난방 할 때마다 두 분을 떠올릴 거예요.”
한마디 말을 해도 사랑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는 이연재 목부.
노동할 때는 몰랐지만 작업이 끝나니 손바닥은 쓰리고 오른쪽 손목부터 팔이 접히는 곳까지 저릿한 통증도 느껴졌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톡톡 잘라내던 순간의 쾌감도 남달랐다.
나뭇가지를 자르는 노동을 반복하며 내가 하고있는 이 노동이 얼마나 주체적인 노동인지를 체감했다.
내가 먹을 음식은 물론, 난방까지 내가 키운 나뭇가지의 부산물로 스스로 하는 것.
나의 노동에도 애정이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동경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이제 부엽 주워요!”
자연목장은 산속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도 여러가지 나무가 있다.
그 중에서 신갈나무, 상수리 나무 등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가 군락처럼 자라는 곳에는 흙빛으로 부식된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목부 부부와 우리는 포대자루에 낙엽을 한가득 쓸어 넣었다.
운동장에 이 낙엽을 깔아주면 돼지가 좋아한다는 말에 포대 안을 발로 밟아가며 꾹 눌러 채웠다.
돼돼와 나는 부엽을 실은 트럭 뒤에 타고 돈사에 갔다. 푹신한 낙엽더미에 기대 덜컹거리는 트럭 뒷자석에 타보니 놀이기구보다 재미있었다.
부엽이 어찌나 많은지 성인 넷이 덤벼드니 시작한지 30분 만에 트럭 한가득 실을 만큼의 양이 쌓인다.
장훈 목부가 트럭을 가져오는 동안 쌓아둔 포대 더미에 돼돼와 함께 누워 하늘을 봤다.
우리가 느끼는 이 기분을 돼지도 함께 느낄 수 있겠지.
돼돼가 낙엽을 주자 돼지들이 ‘폭풍 먹방’을 보여준다.
하.지.만. 낙엽더미를 운동장에 한가득 깔아주니,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돼지들은 정신없이 달려들어 먹어 치우기 바빴다.
나도 돼지들에게 부엽더미를 선물했다.
얘들아, 그거 아니야. 너희도 거기에 누워서 하늘을 봐야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돼지들은 30분 만에 모은 낙엽을 3분 만에 먹어 없앴다.
우리는 왠지 울다가 웃는 심정이었지만 돼지들이 신나게 낙엽파티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를 자꾸 먹이고 싶었다.
‘돼지들한테 풀 주면 먹는 소리가 얼마나 싱그러운지 몰라요.’
전날 이연재 목부의 이야기가 떠올라 주변의 풀을 뜯어 목장에서 키우는 미니피그 오리온에게 주기 시작했다.
신선한 풀을 먹는 자연목장의 반려돈 오리온
목부 부부에게 길들여진 오리온은 왠지 곁을 주지 않아 돼돼가 많이 서운해 했는데, 풀을 주니 콧구멍을 벌렁벌렁 움직이다 먹방을 선보인다.
돼지들이 신선한 풀을 씹는 소리는 먹이를 먹는 것보다는 훨씬 경쾌한 소리가 났다.
뭘 가져다 줘도 폭풍먹방을 선보이는 돼지의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자연목장의 반려돈 오리온은 먹이를 주면 다가왔지만 쓰다듬으려 하면 멈칫하며 뒷걸음질 쳐 돼돼를 서운하게 했다.
하지만 오리온은 먹이는 잘 받아먹었지만 마지막까지 돼돼에게 곁을 주지는 않았다.
참 한결같은 녀석이다.
돼지의 먹방을 구경하고 나니 이연재 목부가 아침에 함께 뜯었던 쑥으로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냈다. 쑥과 크림은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조합이었는데 싱그럽고 달콤한 봄의 맛이었다. 거기에 쌉싸름한 민들레 꽃까지 얹으니 균형이 잘 맞았다.
“자, 이제 두 분 우프를 마칠 시간이에요.”
“사흘동안 맛있는 밥이나 얻어먹고 힐링만 하다 가는 기분이에요.”
“원래 우리 목장은 둘이서도 충분한만큼만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우프를 한 이유는 워낙 와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을 위해 열어둔 거고요.”
적절한 일의 양도, 우프 호스트가 된 이유도 너무나 그들다운 이유였다.
나는 우프 방명록을 펴 자연목장 목부 부부에게 얻은 감동을 떠올리며 한자한자 꾹꾹 눌러썼다.
‘혹시 일상에 지쳐 자존감이 떨어졌다면 자연목장에 오세요. 작은 일 하나에도 감동하고 기뻐해주는 목부 부부의 모습에 어느새 자신감이 상승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이번에는 우프로 예약하고 왔지만 앞으로는 그냥 전화하고 올 거예요. 우리의 진짜 인연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장훈 목부는 돼돼에게 달걀을 건네며 작별인사를 했다.
돼돼 역시 헤어짐을 아쉬워하자 장훈 목부가 배웅하며 직접 기른 달걀을 전해준다.
나는 이연재 목부와 깊은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헤어짐은 아쉽지만 이제 우리에겐 언제든 전화하고 찾아갈 돼지목장이 생겼다.
자연목장의 첫번째 우퍼였던 우리는 다같이 몸빼바지를 입고 우프 플랜카드를 들고 기념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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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롬 기자 arom@hellofar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