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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파머 Apr 26. 2019

내일을 기대하는 농부, 송주희

검색엔진에서 ‘농부’라는 키워드를 붙이지 않고도 쉽게 검색되는 농부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그리 독특한 이름을 가진 것도 아닌 청년농부 송주희는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농부다. 그에 대해서는 그가 이끄는 브랜드 ‘너래안’과 깨농사는 물론 사적인 TMI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그를 만나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외모 이야기 떼고, 유명농부 떼고, 그냥 송주희가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이야기다.  



‘성공한 농부’ 뒤에 가려진 이야기 



| 안녕 반가워.

안녕 반가워. 나는 강원도 화천에서 콩농사, 들깨농사, 잡곡농사 짓는 송주희라고 해. 나는 서울에서 공부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 지은지 6년째야. 지금은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내가 귀농할 때는 이효리가 화제였어. 이효리 블로그에 올라온 예쁜 사진 보면서 ‘아, 이거다. 이게 내 농촌생활의 모습일거다’ 생각하며 왔어. 


| 그 생각 아직도 유효해?

막상 농번기 되고 생계가 걸려있으니까 그렇게 안 되는 거야. 개랑 산책이라도 나가면 밭 밟아 놓는다고 혼나서 농한기 때만 할 수 있어. (웃음) 


|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 먹방이 화제였지. 난 보면서 ‘저걸 해 먹으려면 택배를 시켜야 하는 거지?’ 생각했어. (웃음) 

여름엔 예쁘게 콩국수라도 해먹을까 싶다가도 너무 더우니까 밥에 물 말아서 김치랑 먹어. (웃음) 김태리는 농사지으러 농촌에 간 게 아니라 힐링하러 간 거잖아. 집도 있고. 아 그 집은 계속 나와, 연료비 걱정도 없이. 겨울에 나무 주워 오는 게 얼마나 일인데. (웃음) 


| 도시 사람들은 보통 밭 옆에 집 있다고 생각 하잖아.

밭은 강원도 화천군에 있지만 나랑 남편이 사는 집은 춘천이야. 우리는 지금도 매일 집을 알아보는 게 일이야.

 

| 너무 유명하고, 또 성공한 농부로 보여서 나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해 봤어.

어렵고 힘든 건 사람들이 굳이 안 물어 봤어. “매출이 얼마예요?” 이런 질문만 받아봤지.

(갑자기 셀프인터뷰 상황극) ‘가장 어려웠던 점이 뭐예요?’ ‘음, 돈이 없는 것이 가장 어렵고요. 일이 힘든 게 어렵고요. 내 땅 없는 것도 어려워요.’ (웃음) 집 구하려면 대출 받아야 해. 그런걸 굳이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너무 힘들어.

그리고 체력적인 한계가 계속 느껴져. 그동안 안 해왔던 일이니까. 그리고 강원도는 농한기가 정말 길잖아 그래서 봄 되고 나면 일 시작하면 온 몸에 근육이 뭉치는게 한달은 가. 운동이랑 노동은 달라. 골병든다는 생각을 매일 밤마다 해. 그런게 제일 힘들지. 


| 도시에서는 청년들의 이런 힘듦에 대해 사회적인 담론이 계속 나오잖아. 농촌은 어때? 그런 분위기가 있어?

응, 마찬가지인 것 같아. 농촌은 기반 없는 사람이 유입되기가 힘들어서 기반 있는 친구들이 들어와 있는 곳이잖아. 그래서 도시에서 이야기하는 우울함, 박탈감하고는 결이 다르달까. 다른 힘듦이 있어.

이를테면 세대간의 갈등, 부모님과의 갈등. 그리고 생계에 대한 위험과 걱정이 많지. 아무리 지원 사업이 잘 되어있고, 내가 잘 하는 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지만 장담할 수 없잖아. 자연과 함께 맞춰 나간다는 것은 확실성이 없어. 작년에 내가 농사를 잘 지어서 수익을 냈다고 해도 내년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


직장생활하면 연차도 쌓이고, 승진도 하잖아. 하다못해 최저임금이라도 오르지. 그런데 여기서는 농사를 지었다 해도 승진도 없고 연봉이 늘어나지 않아. 오히려 빚이 늘어나지. 주변에 성공 사례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가까운 사람들이 농사짓다 하우스 짓고 빚 내고, 아무리 노력해 농사 지었다가도 트랙터 산다고 또 빚내고. 이런 일이 되풀이 되다 보니까 거기서 오는 불안감도 있지. 


| 그래서 ‘감상적인 마음으로 시골 오지마라’라는 담론이 한참 유행했나? 그런 담론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야? 

오지랖이라고 생각해. (웃음) 모든 사람들이 가치를 돈에 두지 않아. “나는 거기 갔더니 빚도 생기고, 사람들하고 관계도 나빠졌으니 너는 오지마” 이렇게 말하는 건 오지랖처럼 느껴져. 본인은 해 봤잖아. 섣불리 일반화 시켜서 ‘너도 그럴거야’ 생각하는 건 정말 웃기지.  




여성 농민, 송주희 


| 참, 곧 엄마가 된다고 들었어. 축하해. 도시 여성들은 경력 단절 같은 문제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예비엄마 송농부의 고민은 뭐야?

자녀도 계획을 하잖아. 나는 남편이랑 같이 농사 짓는게 아니라 혼자 농사 짓다 보니 ‘몇월에 임신해야 수박을 딸 수 있고, 들깨를 벨 때는 출산을 피해야지’ 계속 이 생각을 하다 임신을 미루게 되더라고. 3월은 안되고 4월은 되고. 이런걸 혼자 계산하게 되더라. 이런 걱정을 스스로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 이게 농촌에서의 경력 단절인가?’ 생각했어.

회사는 출산하면 휴가가 있잖아. 그 기간동안 임금도 있고. 그런데 농촌에서는 그게 없는거야. 그럼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한 노동의 댓가가 아무 것도 없어지는 거야. 올해는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있어. 한편으로는 6월에 낳으면 “들깨는 벨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어. 


| 도시에서도 야근이나 업무에 지장있을까봐 임신 소식을 숨기기도 하는데 농사도 그런 고충이 있었구나. 

병원에서 “임신 5주입니다” 확인 받은 그날이 들깨 터는 날이었거든. 아직 집에는 말을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전날처럼 깻단 옮기고 깨를 털었어. ‘어제도 했는데 오늘 또 한다고 어떻게 되겠어’ 싶으면서도 계속 불안한 거야. 아이가 잘못될까봐. 그런 불안감도 있고, 생계에 대한 불안감도 뒤따라 오지. 


| 지자체 지원은 없어?

가정부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인건비를 지원해주면 안될까? 농사를 지어야 실질적으로 생계유지가 되는 건데. 그래서 올해는 웬만한 일은 다 하기로 했어. 잠깐 (애플수박) 심고 나서 애 낳고 오면 달려있겠지. 남편이 대신 도와주고 내 인건비 못 받는다 치고. 키우는 것도 문제이긴 한데, 남편도 프리랜서고 가족농도 시간 조율이 되니까 서로 봐줄 수는 있어. 그런데 안 그런 친구들은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의 첫 애플수박을 정식한 송주희 농부


| 이웃들 반응은 어때? 축하도 많이 받았겠는 걸.

내가 노인대학에 강의를 나가거든. 거기 다니는 할머니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당번을 정해서 봐주신다고 했었어. (웃음) 증거로 찍어 둔 영상도 있어! 예전엔 막상 낳으라 재촉 하시더니 지금은 힘 없다고 학교도 못 나오겠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래도 시골이나 도시나 애는 부모가 키우는게 이상적이라 생각해. 


| 많이 듣는 뻔한 질문이겠지만 아이도 농부가 됐으면 좋겠어?

응, 나는 우리 애랑 가족농을 하고 싶어. 둘, 셋은 낳고 싶은데 그럼 4~5년동안 일을 거의 못하는 상황이 되잖아. 그런 것 때문에 또 포기가 되더라고. 


| 주변에 아이가 다닐 학교는 있어?

응, 초,중,고 다 있어. 한 반에 세네명 뿐이지만. 그래도 주변에 학교가 있어 다행이지. 


| 송농부에게 씌우는 ‘얼짱농부’ 프레임에 대해서 말을 아껴오다 최근 들어 이야기하기 시작했잖아.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함들이 있잖아.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이게 사실은 합리적이지 않은 문제였구나, 이걸 인지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거기서 오는 불편함을 이제서야 알게 됐달까. 시골의 모든 일들이 대부분 남성 위주로 돌아가잖아. 시골에서 남성은 경영주의 느낌이 강하지. 그런데 여성들은 뒤따르는 존재고. 그런데 나는 남편이 농사짓지 않는데, 아직까지 시골에서는 거기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 


|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듣지?

결혼 전에는 “시집가면 다 그만두겠지”, “농사 일 어떡해? 여자 혼자 하다 포기하겠지” 이런 얘기 많이 들었지.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 그런 일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내 친구 같은 경우에는 여자인데 “이장을 해라” 이런 이야기도 많이 듣는대. 그런데 그 친구가 내년에 결혼을 고민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마을에서 하는 말이 “그럼 이장하면 안 된다” 남자는 결혼해도 이장이 되는데 여자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차별이 있지.

이건 그냥 너무 익숙한 차별이잖아. 이런 것들이 생활 속에 있지.  




송주희식 반농반X 


| 아까 노인대학에 강의 나가는 이야길 했잖아. 얼마나 나가?

노인대학에 나간지는 이제 4년차야. 그래봐야 일주일에 한 번 나가고. 시골에 있으면 동네가 좁아서 매일 마을 사람들 만나고 대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안 그래. (웃음) 하루종일 농사일만 하다 보면 정말 가족 빼고 아무도 못 만나는 날이 더 많아. 어딜 가야 사람을 만나거든. 그동안 길에서 만났던 할머니, 우리집에 콩 뽑으러 오셨던 할머니. 예전에는 다 우리 일 도와주셨던 분들인데 이제는 연세 드셔서 그것마저도 못하시는 할머니들이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다니는 데가 노인대학이거든. 그런 할머니들 만나는게 좋아. 


| 농사, 가공, 그리고 +a잖아. 힘들지는 않아?

다른 내레이션 같은 건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데 많지는 않아. 그리고 이제 익숙해져서 습관이 됐나봐. 노인대학엔 매일 수요일에 가거든. 그날은 새벽부터 일하다가도 노인대학 갈 시간 되면 가족들이 알려줘. “주희야, 시간됐어!” 내가 노인대학 나가면 엄마도 같이 나서서 급식 봉사를 같이 해주셔. 그럼 나랑 엄마랑 같이 출근 하는거야. 수요일만 되면. 그럼 아빠는 일 하시다가 점심 드시러 오셔. 


| 가족이 마을 공동체에 녹아 들어 사는 것처럼 들려.

맞아. 우리동네 특성인가? 이런 화합이 잘 돼. 그리고 우리가 토박이니까 그 영향도 커. 나를 어릴 때부터 봐오신 분들이잖아. 그래서 나에 대한 신뢰도 커. 


| 동네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아. 앞으로 동네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어?

우리 동네가 화합은 잘 돼도 아직까진 문화가 없고, 세대가 융화되기 어려워. 그래서 귀농한 분들과 모임하고 있어.  




6년차 농부가 만드는 안심하는 농산물 


너래안 기름을 손수 짜는 송주희 농부


| 너래안이 이 지역 골짜기 이름이기도 하면서 ‘너와 내가 안심하는 농산물’인데, 송주희 농부가 생각하는 안심하고 먹는 농산물은 어떤 거야?

유기농, 친환경을 떠나서 생산자가 즐거운 마음, 선한 마음으로 농사 짓는 거라 생각해. 그래도 아버지가 계속 친환경 농사를 지으셔서 유기농 공부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임신했을 때가 공부할 기회인가 싶기도 하고(웃음). 


| 아니 여기서 공부까지 더 하겠다고?

농업인 친구들한테 교육이 정말 많은데 그 교육 다 쫓아 다니는 것 신기해. 직거래 장터 쫓아다니고. 나도 3년차때는 그렇게 다 쫓아다니면서 살았어. 농사일도 못하고 내가 배우는 것도 없고, 유기농은 내가 해보면서 배워야 하는데 교육 다니다 보면 직접 배워볼 수 없이 끝나는 거야. 그래서 이제는 집중해야겠다 싶어서 작년 재작년에는 외부활동을 안 했어. 


| 외부활동도 하다가 안하면 답답하지 않아?

그런데 외부활동 안하니까 보이는 것이 많더라. 여기서 뭘 해야겠고, 여기 흙은 뭘 해야겠고. 이런 것들.

 

| 어떤게 보였어?

우리 동네사람들이 왜 저 농사를 지을까가 보이기 시작했어. ‘신박하고, 새로운 것 좀 짓지. 왜 콩농사를 지을까?’ 늘 이런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여기가 낮 기온은 남도랑 비슷해. 일교차가 클 뿐이지. 그니까 제약이 있고.

우리집 흙이 어떤지,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도 보이더라. 지금 내가 농사짓는 땅은 논을 개간해서 유기물도 없고, 물도 금방 빠져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고 맛있는 무언가를 농사 짓기는 어려워. 그럴 때 제일 손쉽게 할 수 있는게 콩 농사야. 그리고 ‘왜 돈도 안되는 들깨를 할까’ 생각했는데 주변에 멧돼지나 고라니가 많아. 처음엔 고구마도 심어봤는데 고라니가 싹을 다 먹어 버렸어. 옥수수 밭에는 멧돼지 소리가 들리는데 멧돼지는 매일 지켜서 폭죽도 쏘고, 뭘 태워봐도 안 가더라고. 그러니 선택지가 많지 않지. 


| 와, 농사 6년차의 전문성이 느껴지는데. 이제는 농기계도 꽤 다루겠어.

농기계는 이제 거의 마스터야. 트렉터, 지계차, 관리기… (웃음)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

 


| 송농부의 지난 인터뷰를 찾아보니 고맙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더라. ‘솔바람만 불어와도 고맙다’고. 송주희는 그렇게 긍정왕인 사람인가?

아냐, 매일매일 바뀌어(웃음), 사람 감정이란게. 이 바람에 감사함을 느끼다가도 봄 바람 불면 “옥수수 타겠다!” 싶어. 그런것 있잖아, 자연에 대해서도 어느날 은 감사한 바람으로 느껴지지만 어느날은 얄미운 바람이기도 해. 그때그때 달라. 그때마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더라고. 그날의 심리에 따라 내가 똑같은 바람을 이렇게 평가하는 구나.

사실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씀인데, 바람만 불면 “아 이건 우리 엄마가 보내주는 바람이야. 우리 딸 더울까봐 우리 엄마가 보내주는 바람.” 이라고. 그러니까 바람 불 때마다 맨날 그 생각만 나는 거야. ‘앗, 이건 우리 엄마의 엄마가 보내주는 바람이네.’ 나도 나중에 엄마가 안 계실 때 바람이 불면 그런 생각이 들겠지. 


| 송농부의 그런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해. 송농부는 어떨 때 제일 행복해?

내가 행복해야 주변에도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해. 시골 같은 공동체 안에서는 우린 너무 다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인식도 있잖아. 그것보다는 각자 일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영향을 끼치게 되지 않을까.

나는 남편이랑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 ‘내일 뭐할까.’ 그걸 그리는 것을 좋아해. 그러면 내일이 기대 되더라고. 


| 내일이 기대되는 삶은 정말 멋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의 목표가 뭐야?

남편이 맥주 양조를 배우려고 계획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우리동네, 오음리를 느껴봤으면 좋겠어. ‘리틀 포레스트’ 하루만 느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여기서 보내면 좋겠지. 


| 오늘 정말 즐거운 대화였어.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어?

응, 아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 댓글 때문인가? 자신이 알고있는 농촌의 모습에만 갇혀서 농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농부라는 직업을 획일화해서 생각하는 것도 말야. 



유기농펑크(이아롬) arom@hellofarmer.kr 

© 헬로파머 http://hellofar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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