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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파머 Jan 02. 2019

더 나은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선발을 바라며

청년창업농 지원사업 익명의 심사위원 A씨가 전하는 편지

※이 글은 ‘(아무도 안해서 우리가 한다) 청년농업인이 직접 진단하는<청년창업농 지원사업 끝장토론>’에 응원의 마음을 보내준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에 참여한 심사위원의 편지를 편집한 글입니다. 심사과정에 참여한 익명의 심사위원 A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과 참여하는 태도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농업분야는 잘 모르지만 청년과 귀촌에 관하여 연구와 활동을 해온 청년입니다.

저는 올해 두 지역의 청년창업농 면접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농업을 잘 몰라 심사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참여한 이유는 이 사업의 취지가 경험이나 인맥이나 자본이 없이 농사를 지어보려는 청년들을 위한 거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 그렇게 맨손으로 농사짓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면접에 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심사를 보면서 ‘이건 좀 취지랑 다르게 가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언젠가 꼭 얘기해보리라 다짐하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이었다는 걸 알리면 안된다는 다짐을 받기도 했고, 또 어떤 자리에서 말해야 좋을지 고민이 들어 묻히는 게 아쉽던 차에 이런 자리가 있다고 해서 나눠보려 편지를 씁니다. 




이 사업의 진정한 취지는 무엇인가요?


정부에서는 2022년까지 청년농 1만명을 육성하는 청년창업농을 지원해 농업 고령화를 해소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청년창업농 선발 및 영농정착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고요.

심사위원 사전 교육자료에 따르면 농사지으려는 청년들 중 ‘특히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창업농에게 지급’ 하고, 나머지 후계농 지원이나 창업 지원금, 교육 지원 같은 건 또 그에 맞는 대상자들에게 실시하는 정책입니다.

즉 ‘사업 잘 할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없지만 농업을 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발 기준에도 그런 취지를 가급적 많이 반영한 흔적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서류에서 동점자 발생 시 승계기반이 없거나 독립영농경력이 짧은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1. 사업의 취지를 명확하게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에는 영농조합법인 대표, 협회 대표, 컨설팅기관 대표 이런 분들이 많았어요.

심사위원 사전 교육에서는 정책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막상 심사에서는 영농 성공 계획이 뚜렷한 이들에게 호감을 표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호감이 결과에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사위원들의 질문이나 피드백을 보았을 때 영농의 성공 가능성을 보는 다른 영농 지원 사업 심사에 가까운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도 담당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만난 어떤 도의 담당 국장은 ‘안그래도 영농 정착 지원 사업도 많은데 뭐하러 생활비까지 주느냐. 괜히 일만 만든다. 우리 지역은 성공할 사람들을 키우겠다’는 입장이었죠.

그러니 농림부의 취지에 맞게 경험 없고 기반 없는 청년들이 그 지역에 많이 뽑힌다고 하면 과연 제대로 된 지원이나 케어를 받을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죠.


아무래도 영농 기반이 없고, 영농 경험도 없는 청년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부모님 영농 기반이 있어서 승계 계획이 뚜렷한 청년들이나, 농고나 농대 졸업생들)에 비해서 사업 계획서가 구체적이지 않고 성공 가능성이 적어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연농이나 자급농을 해보려는 귀농 초기 청년들의 생각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있죠.

그러니까 당연히 영농 계획이나 성공 가능성을 놓고 보면 기반 없는 청년들이 불리할 수밖에요. 


심사위원분들이 평소에 심사해 온 경험과 농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기 철학이 반영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경험과 기반 없이 농사를 지어보려는 초기 영농 정착자들에게 지원금을 지원하려는 취지에 공감하고 계신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어요.

그건 농림부에서 정확하게 지침을 주고 심사위원들과 공감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2. 면접 평가 기준과 질문이 취지에 맞지 않았습니다

평가 지표나 항목은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것일테니 대체로 수긍이 가지만, 그 세부 질문이 과연 이 사업 취지와 맞나 싶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에 대한 자세를 물어보는 항목에서 ‘FTA에 어떻게 대응할 건지 얘기해 봐라’라든지, ‘IT 정보화 기술에 얼마나 적응력이 있는지, 활용할 구체적인 계획은 뭔지 얘기해봐라’는 질문이 있었죠.

영농정착 가능성을 묻는 항목에 ‘스마트팜, 6차산업을 알고 있나, 어떻게 적용할 건가’는 내용도 있었어요.

물론 농업 환경이라든지 이런저런 주변지식을 배우려는 사람이면 이런 내용은 알겠지만, 질문이 그러하니 답변에 ‘스마트팜’이나 ‘6차산업’ 같은 단어가 나오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청년 농업인이 꼭 이런 걸 필수로 알아야 하나, 특히 자본도 없고 농사 경험도 없는 청년이 스마트팜이나 6차산업을 염두에 두고 자기 계획으로 삼는 게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3. 심사위원, 평가지표 제작자들은 청년을 이해하고 있나요?

심사위원들은 대개 50-70대 남성, 영농단체의 대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자기가 살던 농촌에서의 생활방식이나 문화에 익숙한 나머지, 청년들이 농촌으로 왔을 때 어떻게 살고싶어 하는가라든지, 청년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이해가 없는 부분이 아쉬웠어요.

특히 면접 항목 중에서 지역사회 참여에 대한 자세를 묻는 부분이 있었는데,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있는가?’라는 질문도 있어요. 심사위원들이 참여자의 공동체 기여를 물을 때 대부분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있나? 4H라든지, 의용소방대라든지”라 물었는데, 청년 면접자 중에서 그 외의 답변이 돌아오면 그걸 공동체 기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청년중에 ‘지역 귀촌자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열고 있다’거나, ‘지역 이웃 고령자들의 농산물을 판

로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알기 쉽게 농기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농기계 비교 유튜브를 만들고 있다’ 같이 청년 귀농자가 자기 역량에 맞는 방법으로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공동체 기여나 활동으로 보지 않는 분도 있었습니다.

재차 “4H하나?”라 물어보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죠.


이 사업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가 후계농에게만 지원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데, 4H를 통해 온 청년들이 유리한 점수를 얻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2030세대의 공동체 활동의 방식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제가 면접 온 청년 농부라면, 이런 유도심문을 받고 나서 ‘결국 4H한테 이 사업 주려는 게 아닌가’란 실망감을 안고 갈 것 같았어요. 


평가지표도 문제였고, 심사위원 분들이 청년을 별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겠죠.

평가지표는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알기로는) 공무원 채용 승급이나 정책사업 심사 선발 등에 사용하는 평가지표를 제작하는 역량평가 전문업체에서 제작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다보니 청년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뽑는’ 정부와 지역사회 어른들의 입장만 너무 반영된 게 아닐까란 답답함이 들었습니다.

마치 지역사회의 ‘일꾼’으로 잘 쓰일 사람들, 기존의 농촌 문화와 농업 산업에 잘 속할 사람을 뽑겠다는 시각 말이죠.

그런 시각은 심사위원 사전교육 진행자가 “이런 평가방식과 문항은 공무원이나 회사 채용 프로세스에서도 많이 사용되니까 참고하면 자녀의 취업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농담에서 잘 드러났어요.  




그럼에도 꼭 필요한 정책,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심사를 다녀오고 나서 저는 이 과정이 너무나 괴로워서 더 이상 참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심사장에서 인구 구성 비율(장년층 남성이 대부분인)을 보고, 그나마 몇 명 되지 않은 청년여성으로 참여했던 것이 조금이라도 당사자성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데 영향을 주었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심사 경험에 제한해서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토론 참여자 중 심사위원 경험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면접하러 오셨던 청년들의 경험도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청년들한테 생활비로 쓸 수 있는 (기본소득 성격의) 지원금을 주는 게 우리나라 국민의식과 정치상황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면, 그나마 이 사업이 시행되고 유지되는 게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림부 입장에서는 여기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나 일부 국회의원, 언론의 욕을 먹어가면서도 꾸역꾸역 이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는데 현장에서 청년들에게 지탄 받는 게 나름 억울할 것 같아요.

(그래서 농림부에선 자꾸 현장의 목소리를 안 들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사업이 유지되면서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청년들과 농림부가 소통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저의 의견을 포함해서 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이 정책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익명의 심사위원 A씨 



© 헬로파머

편집: 이아롬 기자 arom@hellofar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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