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덩어리
아침 여섯 시에는 알람이 울린다. 9월부터는 꼭 아침 달리기를 하려는데 나라는 인간은 첫날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틀 일찍 일어나기를 연습한다. “아.. 내일부터 할까…”를 두 번 먼저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틀이나 미리 준비하는(?) 스스로가 대견했는지 첫날부터 일찍 일어나기에 성공했다. 어기적 어기적 걸어 근처 초등학교로 향한다. 달리기 연습을 차근차근 해 주는 친절한 어플이 5분 걷기를 먼저 하라며 마음의 준비할 시간을 준다. 달리라면 달리고, 걸으라면 걷다가 젖은 수건처럼 몸도 마음도 젖은 채로 너덜너덜 집으로 돌아간다. 젖은 수건의 눈에 학교 쪽문에 커다란 덩어리가 하나 보인다.
커다란 덩어리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와 할아버지 사이의 중년 남성으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쓰다듬고 있다. 무심히 지나가는 척하고 힐끔 보니 까만 고양이다. 매일 밥그릇 물그릇이 채워져 있더니만 예쁨 받는구나, 너.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러든 아저씨를 보며 절로 웃음이 난다. 햇빛에 바짝 마른 수건이 된 기분이 든다.
아침의 고양이 덕인지 다음 날도 무사히 일어난다. 발치에서 채 잠이 깨지 않은 고양이가 마치 내 발목이라도 잡은 양 “엄마 가야 돼.. 엄마 운동 가야 돼..”하며 중얼거려본다. 끙챠 하고 일어나 다시 터덜터덜 운동장으로 향한다. 스스로 운동하는 것은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인가 하며.
그런데 오늘은 입구부터 고양이와 덩어리를 만났다. 오늘의 덩어리는 젊고 커다란 체구의 남성으로 역시나 고양이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느라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고양이는 하얀 양말을 네 발에 모두 야무지게 신은 작고 귀여운 신사 고양이다. 저 남자가 지나가면 나도 만져봐야지, 하는 찰나 남자가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야옹아아 야옹아아 부르며 언덕을 올라온다. 너, 이 동네 슈퍼스타였구나. 두고 봐라 집에 갈 때는 나도 가까이 가고 말 테다.
고양이 생각을 골똘히 하며 걷다가 달리다가 허억허억대며 운동장을 떠난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아저씨를 만난다. 계단에 앉아 있는 고양이 덕택에 아저씨의 한 발은 삐죽 몇 계단이나 아래로 뻗어있다. 아저씨가 떠나고 나도 슬그머니 고양이 옆에 가서 앉아 본다. 야옹아, 야옹아 불러보지만 쳐다도 보지 않는다. 아까 젊은 남자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모두 매일매일 너를 아껴줬겠지. 그래서 아직 낯선 나는 아는 체도 안 해주는 거겠지.
내일도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필코 나도 계단의 덩어리가 되어서 야옹이와 눈 마주치고 쓰다듬어보리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