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3.17.금 가치)
10세 이전
잘 기억나지 않음. 아무래도 엄마, 아빠, 동생들 같은 가족중심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그 외에 중요했던 것은 크리스마스날 선물의 유무 정도. 머리맡 커다란 양말에 과연 선물이 들어있을까 하는 기대감. 다음날 아침 정말로 텅 빈 양말에 선물이 들어 있었을 때 느꼈던 격렬한 놀라움과 즐거움. 아직도 기억나는 싸구려 새빨강 벨벳 원단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질감.
10세~13세
학교 중심적인 것들. 친구들과의 시간, 올챙이 잡으러 다 같이 산(이라기엔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하지만)을 타다가 발견한 절의 연못이나, 학교 앞에서 사 먹는 아폴로와 테이프 같은 불량식품들. 쫀디기 보다 100원 비싸지만 안에 환상적인 호박젤이 들어있는 호박쫀디기를 사 먹기 위해 100원 모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 내다 버리고 싶었던 가치는 피아노 학원. 취향에도 적성에도 안 맞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다닌 결과 음악회와 악기와 음악교과마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피아노도 못 쳐!
중학생~고등학생
뭐니 뭐니 해도 친구+성적이 중심이던 격동의 시기. 그리고 자도 자도 먹어도 먹어도 해결되지 않던 잠에 대한 욕구와 식욕. 친구의 표정과 말투에도 나의 인생의 희비가 갈릴정도로 왔다리 갔다리. 친구가 전학 간다는 말에 세상이 무너지고, 칭찬과 인정의 말 한마디에 온 세상이 환희와 기쁨으로 범람하던 시기. 가끔은 좋아하는 남자애의 툭 던지는 한 마디에도 휘청휘청. 대학, 성적, 학생부, 수행평가, 모의고사, 영어 단어, 요점정리노트, 필기, 문구류 같은 것들.
20대
중고딩 때와는 다른 인간관계. 술이나 날씨의 힘에 기대어 얻어낸 “넌 정말 좋은 애야!” 따위의 말에 인정 욕구를 채우던 시절. 사랑, 실연, 연애, 해외여행, 휴학, 복학, 임고, 취직, 직장, 학교, 아이들. 가끔은 화장이나 꾸밈새에 대해 손도 대 보았으나 아 이건 내 분야가 아니다 하고 때려치우고 나이키 바람막이와 버켄스탁 슬리퍼에 정착. 그리고 오 마이갓, 결혼! 20대의 대미는 결혼과 이사가 장식했다.
30대
새로운 곳에서의 여행 같은 삶. 코로나로 여행이 차단되었을지언정 관광지에 사는 사람은 매일이 여행 같았다. 고양이 두 마리를 보호소에서 입양. 그리고 출산. 남편+고양이+아기가 최우선 순위에 있다. 남편은 정말 귀엽다. 고양이는 정말정말 귀엽다. 아기는 정말, 정말, 정말 귀엽다!
내게 중요했던 가치는 무엇인가, 인생을 쪼로록 살펴본다. 명품이 중요했던 적은 없지만 돈이 많으면 좋겠던 적은 많았다. 성공과 성취가 중요했던 적도 있었지만 사랑과 여유가 늘 더 중요했다. 도시보다는 시골이, 혼자보다는 여럿이 더 우선된다. 인간은 결국 인간이 구한다고 믿는다. 앞으로는 어떤 가치들을 제일 앞에 두게 되려나.
아참! 스피또에는 꼭 당첨되고 싶다. 복권은 내게 중요한 가치지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