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호 Mar 04. 2023

할머니는 지랄맞고 할아버지는 징그럽다

달팽글방(2023.3.4. 토 노인)

      언덕길 따라 조르륵 늘어선 집들에서 두 번째 집이던 우리 집. 초록지붕집, 파란지붕집, 예슬이 할머니네, 쌍둥이네, 탁씨네처럼 집집마다 이름이 있던 작은 우리 동네. 그중 초록지붕집이던 우리 집이 어린 나는 썩 마음에 들었다. 나처럼 말괄량이던 빨간 머리 앤도 그린게이블즈에 살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들의 집 맞은편으로는 부동산이 하나 있었고, 그 부동산 부부에게는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부동산 아저씨의 어머니인 그 할머니는 한 줌이나 될까 싶을 정도의 꼬부랑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매일 몸을 동그랗게 말고 텃밭에 앉아 햇빛을 쬐고 계셨다. 톡 치면 데구루루 굴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작고 마른 분이셨지만 부동산 아주머니는 할머니라면 치를 떨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온 동네가 인정하는 쥐 잡듯 며느리를 잡는 시어머니였고, 나이가 들어 작고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밉고 매서운 존재였으리라.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엄마는 아저씨에게도, 아줌마에게도, 그리고 할머니에게도 공평하게 친절했다. 떡이나 간식이 있으면 종종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었고 할머니는 말 거는 이가 없어 사람이 반가운웠는지 엄마를 보면 한참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 내용은 며느리 흉이었겠지만) 이런 엄마를 보던 어린 막냇동생은 어느 날 “엄마 어디 갔어?”하는 내 말에 “엄마가 키우는 할머니 밥 주러 갔어.”했다. 어린아이가 생각하기에는 때맞춰 먹을 것을 주러 가야 하는 할머니에게는 엄마가 “키운다”가 알맞은 단어로 여겨졌던 거다. 자기가 어떤 말을 한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생 앞에서 우리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들은 지랄맞고 할아버지들은 징그러워.”라고 누군가가 내게 노인에 대해 말했다. 누가 말한 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찌나 강렬한 문장이었는지 뇌리에 콱 박혀서는 잊히지도 않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할머니들은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 지독함을, 할아버지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유 없이 당당한 언사를 행하는 능글맞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내게 가장 가까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당장 머릿속에 떠올랐다. 할머니는 첫 손주인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 딸보다 아들이 귀한 세대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딸인 나를 위해 꼬깃꼬깃 돈을 모아 대학에 들어갈 때는 백만 원을 쥐어주셨고, 언제 방문해도 “아이구 우리 찹쌀강아지”하며 내 엉덩이를 토닥여주셨으며, 박태환이 대한민국을 들썩일 때는 ‘우리 손녀 짝으로 딱이네’해주셨다. (물론 박태환 씨와 나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미안합니다 박태환 선수!) 할머니가 지랄 맞은 사람인가? 절대 아니다. 나에게 할머니는 순도 100프로의 맑고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외가 친가 할아버지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내게는 할아버지가 없다. 요리교실을 다니며 같은 모둠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떠올려본다. 나도 너무 조작이 어려운 테슬라를 타고, 딸보다도 어린 나에게 정중한 존대를 써 주시며,“내가 뭘 하면 될까요?” 하고 항상 먼저 물어봐주시는 젠틀맨. 할아버지가 징그러운 사람인가? 이 또한 절대 아니다. 할아버지는 배울 점이 많은 멋진 어른이시다.      

    2명으로 노인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일찍 돌아가셨지던 친할머니는 어땠더라? 할머니는 손주만 예뻐하고 차별해 친척 언니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친절하셨다. 언니 오빠들과 놀고 싶어 따라다니다가 떨어져 나오면 나를 불러다가 손에 오백 원짜리를 쥐어주셨다. 당시 100원이면 아폴로가 두 개, 500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나는 아직도 할머니가 친척언니가 몇 년 내내 노래를 부르던 피아노 사달라는 말을 들은 척도 안 했으면서 친척오빠가 사달라는 말에는 당장 사주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나쁜 사람인가? 알 수 없다. ‘할머니는 지랄맞고 할아버지는 징그럽다’는 말은 강렬하기는 하나 역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다.     


    햇볕이 따뜻하던 어느 봄날 할머니는 옥상에서 산책을 하다가 잠들 듯 돌아가셨다. 그전에는 크게 아픈 곳 하나 없이 정정하셨다.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은 두고두고 호상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날부터 나는 죽음이란 ‘햇볕이 따뜻한 날 산책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할머니처럼 죽어야지라고 결정했다. (그때는 죽음이 여러 가지 긍정적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맙소사, 어린아이들이란!)     


    나에게 ‘노인’이란 그런 사람들이었다. 죽음에 가까운 사람,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 나이가 들어 작아지거나 가만히 햇빛을 쬐고 있는 사람들. 외할머니 빼고는 모두들 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부모와, 내가 사랑하는 어른들이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나도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며, 크거나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늙음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삶’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내 안에서의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추가하고 재정비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누군가 노인이 된 나를 아름다운 사람, 삶을 꾸준히 기록해 온 사람, 다음 세대를 위해 자연도 물질도 아낄 줄 아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나이 들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은 애 안 낳아봐서 모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