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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호 Mar 19. 2023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뭐야?

달팽글방(2023.3.19. 일 숫자)


  어릴 적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친구,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캐릭터, 좋아하는 숫자 같은 것들. 두 개를 고르는 것도 안된다. 꼭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골라야 했다. “너 좋아하는 색이 뭐야?”하면 나는 으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하나를 골라 대답했다. 왜 여러 개를 고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어린아이들은 왜 그렇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놀이에 흥미를 느낄까. 포켓몬스터 중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을 고르는 것도 그때는 인생의 아주 중대한 일로 여겨졌었다. (참고로 나의 최애는 파이리였다. 귀여운 얼굴과  통통한 몸매, 진화하면 아주 힘도 세지다니! 심지어 이름도 귀여워. 파이리라니!)


  나이가 들며 가장 좋아하는 색보다는 좋아하는 옷색깔, 가구색깔 등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선호하는 색이 생겨났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집이지만, 좋아하는 장소는 수십 곳으로 늘어났고, 캐릭터에는 크게 관심 있지 않다. 또 가장 좋아하는 친구 한 명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는 지인과 친구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나 아직 하나 남은 고민은 바로 ‘가장 좋아하는 숫자‘에 대한 결정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1‘과 ’2‘와 ’5‘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2와 5를 후보에 넣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하다고 웃을 일이 아니다. 생일은 어린아이에게 1년 중 크리스마스와 맞먹는 가장 신나는 날이다!) 5를 선택하자니 2가 서운해할 것만 같고, 2를 선택하자니 어쩐지 이인자 같아서 1을 골라야만 할 것 같은 쓸데없는 딜레마. 나는 이 쓸데없는 고민을 30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


  장소처럼 세 숫자를 모두 고르면 되는 일 아닌가 싶지만 어쩐지 썩 내키지 않는다. 그냥 단순하게 1로 하기엔 여전히 2와 5가 맘에 걸린다. 결국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아,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 뭘로 해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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