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키스하는거야

맹랑한 1학년의 공격

by 지은호

고학년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1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나는 매일 충격에 휩싸였다. 1학년이란 얼마나 기상천외하며 쉽게 부러지고 부서지는 존재였던지! 교직 1년차에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엄마에게도 하곤 했다. "엄마, 나도 1학년때 그랬어?" (자매품으로는 엄마도 나 1학년 때 그랬어? 가 있다.)


하루하루가 다이나믹 하나 보니 정말 매일이 시트콤이었는데, 저학년과 같은 건물을 쓰다보니 아침에 교실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이 쪼끄마니들을 보면 그때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거다. 가끔 파란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를 보니 문득 호랑이가 생각났다. 호랑이는 첫 인상부터 강렬했다. 처음 친구들을 만나 자기 소개를 하는 자리였다. 소개는 <안녕? 난 땡땡이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무엇이야.>로 하기로 했다. 호랑이는 "안녕. 난 이호랑. 내가 좋아하는 건 싸움이랑 발차기.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하는데 얼씨구. 발차기를 좋아한다고 한 시점부터 계속 오른발 킥, 왼발 킥, 오른발 킥, 왼발 킥을 반복하며 발차기를 하며(!) 무표정으로(!!) 말을 했다. 너무 웃기고 황당했지만 웃을 수 없이 진지했다. 호랑은 말이 끝나고 홱하고 아무렇지 않게 들어섰다.


사건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우리 반에는 사랑이 넘치는 사랑이가 있었는데, 사랑이가 나와의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다같이 인사하고 돌봄교실과 방과후 가는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가고, 남은 아이들을 인솔하여 운동장까지 데리고 가 하교를 시켰다. 돌봄교실에 가야하는 사랑이는 자신만 먼저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돌봄교실 가기 전에 덥썩 내 손을 잡더니 절절한 목소리로 "선생님! 저 선생님 사랑해요!"했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응 그래. 선생님도 사랑이를 사랑하지~~"했는데 옆에 서있던 호랑이가 이죽이죽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 사랑하면 키스해~~ 사랑하면 키스하는 거야!" 하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1학년 이 꼬맹이가 나에게 엄청난 난이도의 문제를 던진 것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대답할 타이밍 을 놓칠 판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하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내 입에서 고작 나온 말은 "뭐라고?"였다. 이호랑은 강적이었다. 씨익 웃더니 내 말에는 대꾸도 않고 "키스해~ 키스해~~~"하며 싱글싱글 웃으며 사랑이를 놀려댔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하며 말했다. "호랑이 엄마 사랑하지?" "네" "호랑이가 엄마랑 하는건 키스가 아니고 뽀뽀야! 사랑하면 뽀뽀하는 거야! " 이호랑은 씩 웃더니 어깨만 으쓱 하고는 돌아섰다.


호랑이의 말대로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1년동안 호랑이를 포함한 모든 우리반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아이들은 나를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나는 이 짝사랑을 오랫동안 간직하지 않을까. 어느날 문득 지나가는 아이들의 가방만 봐도, 같은 가방을 메던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나니 말이다. 아침에 문득 호랑이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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