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지 유 Jul 28. 2024

한라산에 참호를 파고

같음과 다름

1. 같음과 다름

세상엔 같지만 다른 것이 있고, 다르지만 같은 것도 있다. 주위를 살펴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대개 이러함을 알 수 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함께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볼까? 이 풍경에 대해 사람들은 완전히 의미가 다른, 이질적 객체의 조합이 만든 장면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사실 같은 존재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서 무릇 또 다른 배움을 얻기 마련이며 (혹은 가르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우침)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가 미처 이르지 못한 질문을 함으로써 사실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배우는 존재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과 인간은 어떨까?  이 둘에 대해 세상은 상반의 개념으로 정의하지만, 사실 육체라는 껍데기를 매개로 하여 환형(換形)할 뿐, 신과 인간은 하나다. 예수와 부처는 동서양, 다른 시대를 관통하여 이 이야기를 하나로 말했다.  우리 안에는 영원성을 가진 신적 존재가 있으며, 신은 인간이란 형틀로 스스로 들어가 부족함을 채운다.

숲과 바다도 언뜻 보기엔 무척 달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지구적 프로그램(생태계의 인큐베이터)으로 탄생한 쌍둥이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숲에도 파도가 치며 바다에도 계곡이 있다. 물고기와 새가 하나의 모습으로 유영하는 걸 보면 놀랍지 않은가?      

타인이란 개념은 나 외의 모든 인적 대상을 타인이라 칭하자고 했을 뿐, 사전적 의미를 극복하여 본질적 의미로 따져보면 타인이란 모두 같아 보여도 다르다. 생떽쥐베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얘기했듯 내가 들인 시간에 따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와 같은 (혹은 ‘나’ 이상의) 타인도 생겨나게 되는 법이다. 어린 왕자에게 별에 두고 온 장미는 나의 분신이며 나를 정의하는 압도적 존재이기도 하다.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어떤 존재도 있는데 이를 타자의 범주에 둘 수는 없다.)       


간호장교였던 아내와 사병으로 만나다.


군대에서 만나 오늘로 30년 이상을 함께 보낸 ‘아내와 나’도 이러하다.

우린 성향이 너무 다르다. 태생부터 다르다.

아내는 아들이 너무 귀한 집에서 복중 아들인 줄 알고 태어난 (부모를 속여 유산을 모면한) 여성이며, 나는 아들만 있는 집에서 복중 딸인 줄 알고 태어난 (역시 부모를 상대로 사기를 벌인 덕분에 유산을 모면한) 남성이다.  

우리가 만날 때 아내의 직업은 군인이었고(남성 다수조직 내 여성), 나는 속기사였다. (여성 다수 조직 내 남성)  아내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좋아하지만 난 청국장과 콩국수를 좋아한다. 난 집 앞을 지나는 낯선 행인도 손짓해 집으로 부르는 걸 좋아하고, 아내는 부모형제조차 내 집으로 부르는 걸 질색하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성품이다. 아내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지만 (합리적, 과학적 사고방식 지향) 나는 영적, 형이상학적, 미학적 삶을 지향한다.      

우린 7년을 교제했기에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이렇게 다짐했다.  

“우린 분명 언젠가 헤어질 거야. 아이 낳지 말자. 아이에게 미안하잖아? 그리고 언제든지 깨끗하게 헤어질 만반의 준비를 하자.”     

그래서 우린 아직도 아이가 없으며 재산도 정확히 반반 각각 관리한다. 합의가 되면 언제든 헤어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부부는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 물론 그동안 숱하게 싸웠다.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어느 정도로 싸웠냐 하면 “저 부부는 도대체 언제 헤어지는 거야?”라는 이웃의 수군댐이 들려올 정도였다. 힘으로 싸우면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아내가 우세했고, 말싸움을 하면 내가 우세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전투는 대개 무승부로 끝났다. 때로 심각하게 싸운 뒤에는 상처 입은 영혼의 눈으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다.      

‘지금 그때야? 지금 헤어질까?’   

    

그런데 헤어질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행복하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이 부부가 간과한 게 있었다. 서로 다르지만 같다는 사실 말이다. 너무 다른 둘이 만나도 들인 시간이 감복할 만큼 길어지면 서로 같아질 수도 있다.      

우린 지금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관계를 관찰해 보면  신의 손길이 닿았음을 알게 된다. 어느 순간엔 내가 신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미학적으로 봤을 때 이건 명작이다. 서로 조합되길 거부하는 이질적 재료와 주제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가끔 난 숲을 거닐며 이런 사색에 빠진다.

“우리의 이건, 새로운 종교다. 서로 싸우느라 정신을 놓친 나머지 지구 공멸의 순간으로 질주하는 인류에게 이 정신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조바심이 난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노하우를 인류에게 전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만 같다.      

“인류여! 우리는 하나의 자리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짐-

작가의 이전글 진실이 아프다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