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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Jul 03. 2024

진실이 아프다는 착각

진실의 글

이 글의 첫 제목은

<진실로, 진실로 진실은 아프다.>였다.

그런데 제목이 바뀌었다.



꿈을 꿨다.

인간세상에서 5살 정도로 보였던 내 스승은 제3의 눈(차크라)을 바늘로 꿰매고 천장에 매달린 모습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혀를 바늘로 뚫고 수행 중이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스승에게 물었다.

(혀가 그 모양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영적 대화였으므로 불편함이 없었음)


"너무 괴로워서 이 수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스승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착각에서 벗어나라. 이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고통스러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너는 다만 떠올려라."


"무엇을 떠올리란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스승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에 마음이 벅차올라 꿈에서 깼다.



꿈에선 깬 나는 왜 가슴이 벅찼는지 어리둥절했다.

뭔가 순간적으로 깨달은 것 같았는데 금방 놓치고 말았다. 오히려 괴상한 꿈을 꾸었다고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괴상한 건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닐까?

자꾸 메아리 온다.

"친구여.

물질세계는 가고 이제 영적 세상이 오고 있노라, "


그리고 장마가 왔다.

나는 아직도 그 꿈을 떠올린다.

꿈을 잊을 수 없다.

 한없이 마음이 아리다.


줄기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에 대해 사색한다.

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 떠올린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 한숨 쉰다. 글을 쓰는 것이나 그 무슨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웃 할머니께서 우리 집 수국 색깔이 다른 집에선 볼 수 없는 예쁜 색을 띠고 있다며 가지 몇 개를 떼 달라했다.


말없이 잘라줬지만 그 할머니는 알까?

수국은 그 자신이 뿌리내린 땅의 성질에 따라 색을 달리 한다는 사실을....

매일 우리 집 강아지가 그 수국 아래 실례를 한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아는 것 가운데 몇 개나 진실에 가까울까?


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죽음은 나에게만큼은 오지 않을 거란 가정 하에 행하는 모든 탐욕들.

혹은 늙고 있다는 두려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무한궤도의 두려움.


진실을 첫 대면했을 때는 고통스럽다. 그래서 알면서 모른 척하기도 하고, 심지어 스스로 진실을 인지의 그물에서 풀어주기도 한다. 망각이란 훌륭한 도구가 있으니까 그건 쉽다. 쉬운 건 좋기도 하다. 어렵게 살기보다 쉽게 살길 우릴 희망한다. 하지만 우리 희망만큼 언제 삶이 쉬운 적이 있던가? 잠시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일 뿐이다.


그러면 진실은 아픈 걸까? 진실을 마주 하는 것이 괴롭기만 한 걸까? <가짜를 즐기다, 갈 때 가면 그만이지.> 식의 삶 쉽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쉬운 건 도무지 매력이 없다. 배추를 절이지 않고 소금 툭툭 뿌려 만든 김치 같다.


결국 내 꼭지는 쉽게 살지 말라는 것에 꽂힌다. 쉽게 살지 말라고 스승님은 꿈에 나타나신 것이다. 모든 게 잠시 뿐일 세상의 것보다 영원의 세상에 놓인 나야말로 진짜라는 진실을 떠올려야 한다.  진실은 아프지 않다. 어렵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길이다. 멋진 건 아파도 쾌활하다. 쾌활한 것들은 치유의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죽음은 쾌활한 것이다. 죽음은 사실 치유의 하나다. 죽는 것이 이럴진대 사는 것 가운데 무엇이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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