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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Dec 18. 2022

참호 일기

2022. 12. 18.

2022. 12. 16

오늘 서울 올라간다.

죽어가는 친구 때문에, 살아있는 친구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학동창모임 일정이 잡혀서 친구들 얼굴이 보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는 게 5년 만인가?

한동안 제주를 떠나지 않았기에 긴장이 되어 너무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번뜩 떠오르는 생각.. 탑승권 발급을 안 했네! 부랴부랴 폰을 켜고 접속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일찍 일어났네? 탑승권 발급 까먹은 것 같아서... 내가 해줬어.. 새벽 1시쯤..."

"아! 고마워. 근데 왜 그때까지 안 자고?"

"당신 어디 간다니까 잠이 안 와서... 기분이 이상하네."
"뭐야... 좋다는 거야? 막 설레?"


아내는 살며시 웃을 뿐 대답이 없다.

나는 그 의미를 안다. 고마웠다.


아무튼 일찍 깼다.

출발할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아서 거실에 앉아있는데 서울행 티켓을 끊은 게 살짝 후회됐다.

나이 든 탓일까? 친구 소식에 너무 감상적이 되어버렸어, 하고 머리를 감쌌다.

공항행 버스정류장까지 우리 집에서 10분 동안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아내가 태워주기로 했다.

아내와 이별 키스를 나누고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버스기사가 손바닥을 보이며 타지 말란다.

"왜요"

"마스크 쓰셔야 탑승 가능합니다."


아씨, 키스하느라 마스크 준비하는 걸 까먹었네.

가방에서 마스크 꺼내는 동안 버스 탑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참아야 했다.


드디어 공항.

8번 게이트 잘 찾아갔는데 탑승권을 본 승무원이 손바닥을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이 비행기는 5분 정도 지나면 수속 시작될 겁니다."


돌아와 의자에 앉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은 내가 잠시라도 떠나는 게 싫은가 보다.'


드디어 공공 셔틀버스.

사람들 행렬이 몰리는 가운데 노인부부가 내 앞줄에 있었다.  앞선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한다.

"손 꼭 잡아!"

마치 이민 행렬에 선 듯 장엄한 표정이시다.

아마 6.25 피난 때도 저러셨으리라.

나도 갑자기 아내의 손을 잡고 싶어졌다.


비행기 22F 내 옆자리에는 30대 후반,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모녀가 앉았다.

제주여행을 다녀가는 듯 보이는데 아주 허름한 잠바, 허름한 신발을 신고 있다. 엄마의 바지는 미안하지만 꿰맨 자국을 보고 말았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녀도 서로의 두 손을 꼭 잡고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위 짐칸에 가방을 올리던 승객이 물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병이 엄마의 머리에 맞아 큰소리가 났다.

마침 옆에 있던 승무원이 사고를 수습한다. 그리고 당황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날 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머 손님 괜찮으신가요? 혹시 불편하신 점이 생기시면 앞쪽 데스크에 비상약이 준비되어 있으니 아버님께서 말씀해주세요."


정말 아픈 표정으로 찡그리고 있던 엄마는 삽시간에 황당한 표정이 되어 날 쳐다본다. 딸은 거북한 표정이다.


왜? 내가 어때서?

오늘따라 다 왜 이래?


동창모임장소를 가는데 바로 내 앞에서 사고가 났다.

서울은 역시 추웠다. 벌써 제주가 그립다.

그런데 모임 장소로 걸어가는 길에 바로 내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서울은 내가 온 게 싫은가 보다.



2022. 12. 18

감기에 걸렸다.

오늘 약속은 취소했다.

잠시 올라온 객지에서 아프다니!

그런데 제주도에서 영상편지가 왔다.

거긴 안녕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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