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츄럴 시티>와 체화된 정체성의 상실에 관하여
인간의 신체는 세계와 접속하는 유일한 인터페이스다. 영화 <겟 아웃>(2017)과 현재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닥터신>이 그리는 뇌 이식의 공포는, 이 인터페이스가 약탈당하거나 강제로 교체되었을 때 발생하는 존재론적 추락을 목격하게 한다. 특히 <닥터신>은 타인의 몸에 이식된 의식이 기존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자아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이 작품들이 공통으로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나라는 존재를 나로서 정의하는 것은 기억인가, 아니면 그 기억을 담는 신체인가?'
2003년작 <내츄럴 시티>는 이 실존적 질문을 맥락을 잃은 이미지들로 가득 찬 디스토피아적 서울과 연결하며, 신체라는 인터페이스가 끊어진 자아의 종말을 처연하게 그려낸다.
<내츄럴 시티>가 그리는 2080년의 서울은 기괴한 불일치로 가득하다. 화면을 채우는 일본식 한자와 번체·간체의 혼용,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미장센은 이곳이 과연 서울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미적 장치들은 미학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서사적 필연성을 지닌다.
Haerin Shin(2017)은 논문 「Engineering the Techno-Orient」에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네오 서울이 실제 한국적 맥락 대신 일본식 벚꽃 문양이나 창살 패턴을 배치함으로써 한국이라는 실재를 지워버린 시뮬라크르로 기능한다고 비판한다. 화면 속 이미지들은 한국을 재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아시아에 투영한 환상을 재생산할 뿐이다. <내츄럴 시티>의 서울도 다르지 않다. 그 도시는 주인 없는 기표들의 집합이며, 특정 문화의 역사와 맥락이 삭제된 채 '아시아적인 것'의 표면만 부유하는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의 공간이다.
이 공간적 정체성의 균열은 영화의 핵심 서사와 정확히 맞물린다. 주인공 R(유지태)은 수명이 다해가는 사이보그 리아(서린)를 사랑하며, 그녀의 기억과 의식을 인간 여성인 시온(이재은)의 몸에 이식함으로써 그녀를 영속시키려 집착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다. 리아는 이식이 이루어지기 전에 소멸하고, R은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실재 없는 껍데기로 가득 찬 도시를 서울이라 부를 수 없듯, 타인의 신체를 빌려 이어가려 했던 존재 역시 끝내 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공간의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 이 두 문제는 영화 안에서 하나의 비극적 논리로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시온의 처지는 묵과하기 어려운 폭력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개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리아의 의식을 담기 위한 기술적 용기(容器)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다. Haerin Shin(2017)이 지적하듯, 의식을 통제당하거나 정보가 소거된 채 주체의 자리에서 배제된 존재는 비참(Abjection)의 상태에 놓인다.
그렇다면 작품 속 가해자들은 왜 하나같이 이 시도가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그들은 데카르트적 세계관에 잠식된 자들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를 분리된 두 실체로 보았다. 사유하는 정신이 자아의 본질이며, 신체는 그와 구별되는 물질적 기계에 불과하다는 심신이원론. 이 논리적 연장선 위에서, 의식을 다른 신체로 옮기는 행위는 자아를 보존하는 일처럼 보인다. <겟 아웃>의 백인 가족도, <닥터신> 속 현란희도, R도 결국 이 믿음 위에서 움직인다. 의식만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나 프랑스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1945)을 통해 이 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몸으로서 존재한다. 기억과 의식은 진공 속에 부유하는 데이터가 아니라, 특정한 신체가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세계와 마주하며 쌓아온 감각적 경험의 총체다. 신체가 바뀌는 순간, 그 기억은 맥락을 잃은 채 표류하는 신호로 전락한다. 리아가 R의 손길에서 느꼈던 온도의 기억은, 그 감각을 가능케 했던 신체와 함께 소멸한다. 시온의 몸으로 옮겨진 데이터는 리아의 체화된 진실을 담아낼 수 없다. 기술로 박제된 기억은 결코 살아있는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체성은 단순히 데이터의 보존이 아니라 타자와 마주하는 구체적인 신체적 경험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완성된다.
결국 <내츄럴 시티>가 보여주는 비극은 기억(소프트웨어)과 육체(하드웨어)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정체성의 파국이다. 실재 없는 이미지로 가득 찬 도시가 서울일 수 없듯, 타인의 몸에 유폐된 기억은 결코 그 사람일 수 없다. R이 끝내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은 리아가 아니었다. 그가 붙들려했던 것은 처음부터 신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식의 잔상이었다. 이 영화는 데카르트적 믿음이 빚어낸 신체 없는 사랑의 환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언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몸이라는 유일한 인터페이스를 통해서만 세계와, 그리고 사랑과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Shin, Haerin. "Engineering the Techno-Orient: The Hyperrealization of Post-Racial Politics in Cloud Atlas." Dis-Orienting Planets: Racial Representations of Asia in Science Fiction, edited by Isiah Lavender III,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7, pp. 116-130.
Merleau-Ponty, Maurice.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