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파스와 핑퐁 눈알, 그 조잡한 ‘나쁜 진실’의 역습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장르가 곧 스포일러가 되는 영화들이 있다. 천만 영화 <파묘>가 오컬트 외피를 입고 크리처물로 점프하며 관객을 경악시켰다면, 최근 공개된 <대홍수> 역시 재난물의 전형성을 탈피한 장르적 뒤틀기로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이들보다 앞선 2003년, '장르 교란'의 원조 격인 <지구를 지켜라!>가 있었다. 포스터는 코믹한 소동극인 척 호객 행위를 했으나, 뚜껑을 열면 잔혹한 스릴러가 흐르고 끝내 SF로 2차 환승을 하며 관객에게 거대한 미학적 배신감을 안겼다.
하지만 이 기막힌 '장르 갈아타기'는 변심이나 변덕 따위가 아니다. 영화학자 제프리 스콘스가 제시한 '파라시네마(Paracinema)'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세련된 취향을 가진 주류 사회를 향해 조잡하고 불온한 '쓰레기 미학'을 투척한 정교한 테러에 가깝다. 파라시네마란 문화적 쓰레기로 취급받는 텍스트들을 재가치화하는 독특한 읽기 프로토콜이다. 스콘스는 주류 영화 문화의 권위에 맞서는 이 대항 미학의 핵심 무기로 '과잉(Excess)'을 꼽는다. 엘리트 관객이 과잉을 예술적 대담함으로 읽는다면, 파라시네마 관객은 조악한 특수효과나 무너지는 서사 같은 '실패의 흔적'을 통해 오히려 영화 너머의 사회적 진실과 마주한다.
주인공 병구는 이 파라시네마적 세계관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인물이다. 학교의 체벌과 소년원, 공장의 폭력 등 정규 시스템에서 철저히 파괴된 그는, 제도권 지식이 쓰레기로 취급하는 B급 잡지와 음모론에 자신의 전 세계관을 건다. 스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제도권 바깥의 불량 지식에 투자하는 자"다. 다만 의식적으로 취향을 선택하는 팬들과 달리, 병구에게 이 '쓰레기 지식'은 유일한 생존 언어였다는 점이 처절하다.
그가 강 사장을 납치해 빨간 팬티만 남긴 채 삭발시키고, 발등을 때수건으로 밀어 물파스를 바르는 장면은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이 조잡함이야말로 병구가 세상에 복수하는 방식이다. 세련된 영화 문법을 배반하는 이 스타일은 관객의 매끈한 취향을 공격하며, 오히려 비린내 나는 현실의 고통이라는 '나쁜 진실(Badtruth)'을 직시하게 만든다. 래리 뷰캐넌의 영화 속 조악한 '핑퐁 눈알' 괴물이 누군가에겐 절망의 실체였듯, 병구의 낡은 아지트는 주류 사회가 외면한 잔혹한 진실의 집결지인 셈이다.
여기에 병구의 조력자 '순이'는 파라시네마적 미학을 온몸으로 체화한 인물이다. 서커스단에서 외줄을 타던 그녀가 선보이는 현란한 격투술은 장르의 혼종성을 극대화한다. 스콘스가 말하는 '과장된 연기(Histrionic acting)'와 장르적 변종의 쾌감이 순이를 통해 분출되는 것이다. 그녀는 병구의 황당한 음모론을 유일하게 믿어주는 존재이자, 조잡한 '나쁜 진실'을 함께 완성해가는 공동 연출자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강 사장이 병구의 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다. 이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양쪽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급적 특권, 즉 '이중 접속(Double Access)'의 민낯을 보여준다. 강 사장은 병구의 고통을 텍스트로서 소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병구는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미쳐갈 때 어디 있었냐"며 그 연민의 뺨을 때린다. 이해와 연대는 다르다는 것, 영화는 이 한 장면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결국 엔딩에서 지구가 파괴될 때, 관객은 병구의 그 '조잡한 믿음'이 사실이었음을 목도하며 얼어붙는다. 주류 사회가 가치 없다고 무시했던 하류의 지식이 실재했음이 증명되는 순간, 영화는 인류의 공격 유전자에 대한 서늘한 비판서로 완성된다. 최근 공개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리메이크작 <부고니아>는 세련된 화면과 업그레이드된 스케일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원작 특유의 '날 것의 무례함'이 얼마나 강력한 파라시네마적 힘이었는지를 재확인시켜 준다.
20년 전 장준환이 던진 처절한 질문이 전 세계에 소환된 이유는 명확하다. 여전히 세상은 소외된 자들의 광기를 방치하고 있으며, 무엇이 진짜 '품격 있는 지식'인지 가려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병구가 남긴 "근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라는 마지막 말은 여전히 유효한 이 시대의 가장 뼈아픈 농담이다. 지구가 파괴된 후 우주를 떠다니는 텔레비전 속 병구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우리가 지켜야 했던 것이 거창한 행성이 아니라 바로 그 소소한 일상과 인간성이었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참고문헌]
Sconce, Jeffrey. "'Trashing' the Academy: Taste, Excess, and an Emerging Politics of Cinematic Style." Screen, vol. 36, no. 4, Winter 1995, pp. 371-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