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이 〈마녀〉로 뒤집은 신체 문법
박훈정의 스크린에서 '피'는 시각적 과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도구로 전락했던 신체가 비로소 주권을 되찾았음을 선언하는, 일종의 선명한 인장에 가깝다. 그의 이름 앞에 '천재성'과 '불편함'이라는 양가적 수식어가 붙는 이유 역시, 그가 다루는 폭력의 수위가 아니라, 그 폭력이 ‘어디에, 누구의 신체에’ 가닿는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7년 영화 〈V.I.P.〉는 그 불편함이 임계점을 넘어선 상징적 사건이었다. 여성을 무력한 범죄의 소모품으로 전시했다는 비판은 지상파 토론의 중심 의제가 될 만큼 뜨거운 논란을 낳았고, 스크린 위 여성 신체의 도구화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듬해 등장한 〈마녀〉(2018)는 감독이 스스로 파놓은 비판의 궤적을 전혀 다른 방식의 건축물로 다시 쓰기 시작한 반전의 서막이었다.
사실 콘텐츠 시장에서 '마녀'라는 타이틀은 대개 비극적인 운명에 포섭된 여성의 이미지를 소환한다. 강풀 원작의 동명 드라마가 보여주듯, 전통적인 서사 속 마녀는 불운을 타고나 고립되거나 그 미스터리를 해체하려는 남성적 시선에 의해 ‘증명’되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에 머물렀다. 하지만 박훈정의 〈마녀〉는 이 익숙한 연민의 고리를 단칼에 끊어낸다. 기억을 잃은 소녀, 평범한 농가, 인자한 양부모까지 구자윤(김다미)은 완벽한 피해자의 외양을 하고 보호 본능을 자극하지만, 후반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어요”라며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영화는 관객이 세상을 읽어온 방식 전체를 해체한다. 비극적 희생자처럼 보였던 소녀는 처음부터 상황 전체를 통제해온 ‘설계자’였음이 밝혀지며, 관객은 가련하게 여겼던 대상이 실은 포식자였다는 반전에 기분 좋은 전율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린다 윌리엄스가 정의한 신체 장르(Body Genre) 이론은 날카로운 분석 도구가 된다. 윌리엄스는 공포, 포르노그래피, 멜로드라마가 관객의 신체에 비명이나 눈물 같은 직접적인 반응을 유도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장르의 효과는 관객의 감각이 스크린 속 신체를 ‘비자발적으로 모방’하는 순간에 발생하며, 전통적으로 여성의 신체는 이러한 쾌락과 공포, 고통의 일차적 구현체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마녀〉는 이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자윤의 신체는 더 이상 고통의 전시대가 아니라 폭력의 발원지다. 멜로드라마가 늘 ‘너무 늦은(too late!)’ 순간의 비탄에 머무를 때, 자윤은 철저히 자신의 계산대로 움직이는 ‘제시간(on time!)’의 인물로서 능동적인 쾌락을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이러한 전복은 단순히 성별을 교체한 ‘젠더 플립’의 흥미를 넘어선다. 과거의 여성 서사가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비극적으로 소모되는 신체에 머물렀다면, 〈마녀〉는 그 신체에 가두어진 장르적 한계를 권력의 기표로 완전히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녀 유니버스’와는 궤를 달리하지만, 제주도의 서늘한 풍광 속에 여성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려낸 〈낙원의 밤〉(2021) 역시 여성을 누아르의 장식적 존재가 아닌 비정한 주체로 세우며 그 가능성을 타진한 시도였다.
박 감독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마녀’의 영토로 회귀해 세계관의 외연을 넓힌다. 시퀄인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2022)은 전작이 보여준 ‘의외의 반전’을 넘어,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비웃는 신체적 스펙터클의 거대한 폭주를 증명해 냈다. 이는 별도의 원작 없이 오리지널 IP만으로 독자적인 세계관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뒤이어 등장한 스핀오프 시리즈 〈폭군〉은 유니버스의 하드웨어를 한층 강화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설정 중심’의 거대 서사를 구축해냈다. 이 일련의 흐름은 결국 〈길복순〉이나 〈파과〉 등 ‘K-여성 누아르’가 하나의 견고한 산업적 트렌드로 자리 잡는 데 초석이 됐다.
하지만 유니버스의 확장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와 〈폭군〉을 거치며 박훈정 유니버스는 방대한 설정과 인물들을 쏟아냈다. 세계관이 넓어질수록 이야기의 응집력이 희석될 위험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제 모든 시선은 제작 예정인 〈마녀3〉로 향한다. 과연 전작에서 펼쳐놓은 복잡한 인연과 스핀오프의 서사를 어떻게 하나의 유기적인 결말로 묶어낼까? 린다 윌리엄스가 보았듯 신체 장르가 단순한 자극 기계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 해결의 형식’이라면, 주체로 거듭난 여성의 신체가 이끄는 이 여정은, 우리 시대가 갈망하는 근원적 카타르시스를 정조준한다. 우리가 〈마녀3〉를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샘플’이기를 거부한 신체가 자신의 운명을 기어이 ‘설계’해내는 그 불온하면서도 찬란한 순간을 다시 목격하고 싶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Williams, Linda. "Film Bodies: Gender, Genre, and Excess." Film Quarterly, Vol. 44, No. 4,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1, pp. 2-13.
박현민. "<마녀> 세계관에 얹힌 맛깔나는 토핑 〈폭군〉." 『K-콘텐츠의 맥락: 숨겨진 메시지』,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