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싫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국어를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이 억지로 백일장 대회에 내보내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 연필을 잡으면 생기는 가운데 손가락 마디 굳은살이 싫어서 그랬는지, 정확히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무언가 쓰는 행위를 기피했다. 그저 보잘것없고, 볼 품 없는 미완성의 조각들이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것 자체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게 되었다. 학창 시절이 대학 시절이 끝나면 더는 억지로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밥벌이를 위하여 졸업 후 들어가게 된 첫 직장이 스포츠 신문사였다. 혼자 서울에 살았고, 반지하를 겨우 탈출해 지상 원룸에 입주하게 된 사회 초년생은, 하고 싶은 일을 100% 자발적으로 선택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월 30만 원 정도의 월세를 꼬박꼬박 내기 위하여 나는 월급을 따박따박 쥐어주는 직장이 꼭 필요했다.
뭔가를 썼지만,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자극적으로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하여, 내용과 상관없는 타이틀이 포털 메인에 꽂혔다. 내가 쓰지도 않은 글이, 내 이름을 달고 나가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기사답지 않은 기사를 쓰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취재가 되지 않은 기사는 쓰지 않고 싶다"고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이 무심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 고상한 척하고 있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말았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고상한 척하는 것이라 평가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잘못되면 나는 이 곳에서 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그러면 30만 원의 월세를 낼 수 없다. 물러날 곳이 없다.
입을 닫고, 글의 형태를 한 것을 매일 생성했다. 일어나 밥 먹고 하는 일이 '그런 것'을 만드는 것이었기에, 언젠가부터는 글에 가까운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듯했다. 글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글이 아닌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더 짙어졌다. 지금 당장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글'을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