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민 Nov 01. 2020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러니깐, 어느 비혼주의자의 결혼

친구 : "네가 결혼할 줄 정말 몰랐다."
나 : "나도 내가 결혼할 줄 몰랐어."


지인들을 만나면 여전히 자연스레 오가는 대화다. 그들의 "몰랐다"는 빈말이 아닌 순도 100% 진심이다. 내 대답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말로 몰랐다. 난 나름 '이 구역의 대표 비혼주의자'였다(고 자신한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일 뿐이고, 그 역시 평생 선택하지 않는 편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 자신했다. 평생 혼자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머리로 되뇌었고, 가끔 입으로도 내뱉으며 그 경도를 높였다.


혼자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거의 17년 정도를 서울에서 혼자서 생활하며,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세입자로서 이사를 거듭하기도 했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원룸에서 분리형 원룸, 그리고 투룸 빌라로 착실하게 내 삶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나갔다. 왠지 모르지만 '슈퍼 싱글'이라는 수식어로 모 방송에 출연을 하기도 했고, 국가 기관에서 '대표 1인 가구'로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


확실히, 분명하게, 명백히 '홀로 안정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굶지 않고 살만큼 적당한 수익이 있었고, 혼자서도 즐겁게 먹고 마셨다. 홀로 해외여행도 다녔고, 심지어 가끔씩 만나 술잔을 흥겹게 기울일 친구들도, 동네 술집 사장님들도 존재했다. 그러니 '결혼'의 필요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최 결혼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혼한 이들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니깐, 10년 넘게 알고 지냈던 친구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된 것은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첫 직장의 선후배,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밤 "너네 둘은 왜 사귀지 않느냐?"는 몹시도 식상한 술자리 질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너네가 결혼하면 양문형 냉장고를 혼수로 해주겠다"는 한 선배의 도발 때문인지, 아니면 그날 술을 마시지 않고 손수 집까지 바래다준 친구의 놀라운 운전 실력 때문이었는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 만나볼까?"


2018년 만우절, 거짓말처럼 고백(같은 것)을 했고, 우리는 10년 친구에 종지부를 찍고, 연인이 됐다. 그리고 딱 5개월 만에 부부가 됐다. 우리의 결혼은 초고속으로 착착 진행됐다. 당시 우리는 둘 다 잡지 마감 노동자였는데, 마치 결혼이 하나의 마감 같았다. 20대의 불같은 사랑이 아닌, 감정과 이성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30대의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파트2인 '부부의 삶'에 돌입한 지 이제 막 2년을 넘겼다.


혼자였을 때보다 더 좋은 공간에서, 더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더 즐거운 시간을, 곁에 있는 절친과 함께 보내고 있다. 오지랖처럼 누군가에게 결혼을 권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지금 그때의 내 선택에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 '결혼'에 대한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을 한다.


"결혼을 의무감에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다짜고짜 피할 것도 아니더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