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엇에 대하여
당신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을 좋아했어요.
그것이 어떤 마음이냐고 한다면, 글쎄요. 아침에 만나는 눈부신 햇살과 같다고 할까, 혹은 가끔 만나게 되는 복숭아색 저녁 노을 같다고 할까. 어떨 때는 폭풍 속에 홀로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그늘 아래 차가운 물을 마시는 여름 어느 날 같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당신이 내게 바란 건 어떤 것이었을까요. 나는 늘 당신이 궁금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네요. 그래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어요. 언제 잠드는지, 언제 깨어나는지,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하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오늘은 무엇을 할 건지, 요즘 무슨 책을 읽는지, 그 책에서는 어떤 구절이 좋았는지, 듣는 음악은 있는지, 어제 봤다고 한 그 영화는 재미있었는지, 이번 주말에는 뭘 할 건지, 해질녘 바람이 불면 나처럼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는지, 그럴 때면 어떻게 하는지, 여름을 왜 좋아하는지, 내가 당신 때문에 그 계절을 좋아하게 된 것을 알고 있는지, 혹시 나로 인해 당신에게도 달라진 것이 있는지, 당신의 미래에 나를 넣어본 적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당신이 나를 궁금해하지 않아서, 당신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 날이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마저 무거워지곤 했어요. 왜 당신은 나에게 묻지 않았을까, 당신이 있는 미래를 꿈꾸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뒤돌아 생각해보아도 그저 결론은 하나네요. 당신은 내가 궁금하지 않았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참 연약하죠. 누구보다 강하게 이어진 것 같다가도 당신이 나를 보지 않는 순간이면,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순간이면 와장창 얼음이 깨진 것 같이 서늘해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내려 앉으면 당신이 다시 나를 찾기 전까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요. 마치 해가 뜨기만을 바라는 해바라기 같았어요. 참 이상하죠. 나에게 당신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혼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당신 없이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저 당신만 떠오릅니다. 다른 친구를 만날 때도 당신 생각을 했거든요.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당신의 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을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도 당신과 함께 보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얼마의 시간이 나에게는 당신이라는 단어로 귀결됩니다. 우습네요. 당신에게 그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을텐데.
관계의 온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던가요? 온도 차가 있으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요. 한쪽이 너무 타버리거나 혹은 얼어붙어버리거나 해서. 당신과의 관계가 그랬죠. 나는 뜨거웠고, 당신은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차가움 때문에 나는 변온동물처럼 살았지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면 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없을 때면 또 얼어붙어버렸죠. 당신 때문에 나는 쉴새없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혹시 미안해하고 있나요? 아니요,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저 나 혼자만의 마음이었던 건데요. 그저 그 시간 동안 함께 웃어준 것에 감사해요. 다만 그 때 내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아주세요. 그저 웃어버리기만 하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게 어떤 마음인지 나도 잘 몰라서 헷갈렸지만 말이에요.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그러면 나는 슬퍼하기만 하면 되죠. 누구보다 당신에게 솔직했지만, 뒤돌아보니 나는 누구보다 당신에게 거짓을 많이 말했네요. 당신이 나를 버릴까봐, 당신이 나를 떠날까봐, 혹시 내 한 마디 때문에 우리의 어떤 것들이 흔들릴까봐. 당신에게 화난 것을 숨기고, 나는 다 괜찮다 거짓말하였네요. 가장 슬펐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나의 거짓말을 당신은 눈치채지도 못했지요. 내가 가끔 며칠 연락도 하지 않았던 것을, 어떨 때는 화를 내기도 했는데 그것마저도 당신은 몰랐지요. 왜냐면 나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나의 마음은, 나의 변화는 당신에겐 고민해야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 한 시절을 견뎠고, 당신을 사랑하여 그 한 시절을 끝냈습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그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여 힘들고 지치고 괴롭고 또 행복했을까요.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