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빠의 단어와 남들이 말하는 단어가 다를 때가 있다. ‘집에서만 입는 옷’이라는 말이 그렇다. 용접공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옷엔 불똥 자국이 많다. 작업복으로 쓰는 옷들이 정해져 있으면 괜찮겠지만 아빠는 일상복과 작업복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옷에 구멍이 많다. 집에서만 입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모임이나 외출을 할 때도 같은 옷들을 입는다. 가족들은 아빠에게 옷 좀 사 입어라 이야기하지만 구지 구멍 난 옷이 편하다고 하신다. 가족들은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핀잔을 줬다. 이런 사건이 몇 차례 반복되니 아빠도 감정이 상하셨는지 알아서 하신다며 짜증을 내셨다. 나중에 아빠의 말과 가족들의 말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삶의 장소가 대체로 집 아니면 일터(공사 현장)인 아빠에게는 제 3의 장소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가끔 제3의 장소에 갈 때(예를 들어 교회를 간다던지, 마트를 간다던지) 구분지어진 외출복이 없다. 이런 사고체계를 가진 아빠에게 외출복이란 단어는 구지 필요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빠의 옷은 ‘집에서 입는 옷’과 ‘작업복’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었다. 아빠의 맥락을 모르는 가족들은 ‘집에서만 입는 옷’이란 단어를 문자 그대로 집에서만 입는 옷으로 해석했다.
영화 컨택트는 외계생명체와 조우하는 SF 영화이다.
우주선 몇 대가 지구의 여러 국가에 떠있다. 각국 정부는 외계인과 천천히 접촉하며 그들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심 갖는다. 외계생명체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정부는 언어학자인 주인공을 섭외한다.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알파벳 단어를 가르친다. 외계인과 주인공은 천천히 서로의 단어를 배워간다. 그러나 국제적인 갈등과, 국가 내부의 갈등으로 정부는 시간의 촉박함을 느낀다. 주인공은 그들에게 지구에 온 목적을 묻는다. ‘무기를 주다’ 외계생명체의 대답에 정부는 더 큰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그들에게 선제공격을 하기로 결정한다. ‘무기’라는 단어에 서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좀 더 대화하자는 주인공의 의견에도 군인들은 우주선 내부에 폭탄을 설치한다.
‘언어는 문명의 토대이다. 인간을 한데 묶는 접착제이며 충돌로 이끈 최초의 무기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 일행의 대사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뭉쳤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했다. 언어 차이로 인해 상대의 목적을 알 수 없으니 자연스레 그들을 경계한다.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한다.
우리 가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다. 아빠가 가지고 있는 ‘집에서 입는 옷’이라는 말이 그렇다. 별거 아닌 차이이지만 서로 간에 오해를 부른다. 이런 단어의 오해는 서로에 대한 생각을 곡해하게 되고 결국엔 감정이 상해 서로를 배척하고 공격하게 된다.
우리가 가족을 이해하려 할 때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한다. 상대방이 쓰는 단어를 알아야 하고, 단어를 쓰는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긴밀한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아빠의 말을 이해하고 아빠의 패딩을 사러 갔다. 구매하기 전 엄마와 난 이 옷은 작업복이 아니라 집에서 입는 옷이라며 아빠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빠도 이 말을 이해하시고 지금까지 일터에 입고 가지 않으신다. 아빠의 머릿속에 그 패딩은 ‘집에서 입는 옷’으로 자리를 잡으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