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보험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왜 자꾸 남이 시키는 대로 보험을 드냐고! 내가 알아보고 내가 들꺼라고.” 남들은 다 자고 있을 시간, 거실이 시끄러웠다.
엄마는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보험가입을 권유 받고 나에게 보험 들으라며 잔소리 했다. 회사 업무가 늘어 정신없는 와중에 같은 소리를 반복하니 스트레스가 터져버렸다. 엄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 좋아서 들으라고 하냐? 너 좋으라고 하는 거지!”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결국 안방에서 주무시던 아빠를 깨우고 말았다. 아빠는 비척거리며 방을 나와 땅에 닿을 듯한 목소리로 둘을 적당히 말렸다. 보통이면 그런 일이 있은 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텐데 그날은 어느 한사람도 물러설 생각 없이 작은 목소리로 말싸움을 이어갔다. 이내 목소리가 커졌고 아빠를 두 번이나 깨우고 말았다. 아빠도 더는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그러면 절대 참지 않겠다고 엄포를 내렸다. 그제야 엄마와 나는 각자의 잠자리로 들어갔다.
내 실비보험은 엄마의 지인을 통해 가입했는데 나중에 보니 해당 상품은 TV에서 절대 가입하면 안 된다고 하는 상품이었다. 엄마는 사실을 알고 지인의 뒷 담화를 하곤 했다. 그 뒤로 엄마가 지인들로부터 제안 받는 상품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직장에 입사하고 점차 자리를 잡으며 맞닥뜨리는 재정의 문제를 엄마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의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엄마와의 보험 사건을 통해 나는 작은 독립을 꿈꾸었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본심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경험도 적은 내가 당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원하셨다. 그리고 자식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고 안정되길 바랐다. 엄마의 본심은 우리의 곁에 늘 있지만 잘 인지하지 못하는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엄마와 다툼 중 가장 불편했던 말이 있었다.
“그래. 너랑 나랑은 진짜 안 맞아.”
방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꺼낸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엄마랑 나는 진짜 안 맞는 것 같아.’ 이 말을 막상 엄마에게 돌려받으니 매우 불편했다. 절대 동의 할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엄마와 나는 ‘보험사건’만 없다면 나쁘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다. 단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대립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의 입으로 습관처럼 쓰는 나의 말을 들으니 깊은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때문에 엄마도 그런 말을 쓰게 되었구나. 실제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내가 하는 말로 인해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구나.
며칠 뒤 보험을 가지고 다시 대화하게 되었다. 마음속 엄마의 불편한 한마디를 간직한 채 대화했다. 그 마음을 간직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직전의 대립보다는 느슨하게 대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비슷한 분위기로 흘렀다. 엄마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의 말들을 조금씩 전했다.
"엄마 그런데 그 말은 틀린 것 같아. 엄마랑 나랑 서로 사랑하잖아. 단지 이 문제 때문에 의견이 갈린 것뿐이잖아. 그러니까 그 말은 하지 말자. 내가 이번 달 안에 보험 가입할게."
사건이 차분하게 종결되기 시작했다. 엄마도 ‘네 말이 맞다’며 동의했고,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볼 수 있었다.
얼마 후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엄마와 나의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아빠는 또 그런다며 한소리 하셨다. 그때 엄마가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니야 우리 이야기 하느라 그런 거지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전적으로 부모를 따라 행동한다. 부모의 말, 행동, 습관. 모두 빠짐없이 체득한다. 이 말의 반대도 성립하는 듯하다. 부모도 자녀의 말과 행동을 따라한다. 자녀 앞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점검하듯 부모님 앞에서도 점검해야 한다.
‘부모도 자녀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