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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임 Jun 08. 2024

능수벚꽃을 찍으려다가

카메라는 능수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인들, 뛰어노는 아이들을 따라 다녔다

휴일 아침,  “벚꽃구경 안 갈래?”애들에게 한 번 묻고 답이 없으면 두 번 묻지 않는다. 그냥 사진 찍는 일을 핑계로 밖을 나온다. 고딩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인지, 맘에 드는 사진을 찍을 것인지 어차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DSLR 카메라를 어깨에 사선으로 걸치고 작은 카메라 가방도 폼나게 걸쳤다. 바로 찍기 편한 스마트폰은 손에 쥐고 있다. 블랙에 화이트 복장, 그리고 목에는 면화 구름이 몽실거리는 쪽빛 스카프가 다소곳하다. 왼쪽 손목에는 블랙 보호대가 카메라 장비와 콤비처럼 감겨 있다. 까만 야구모자의 테를 뒤로 돌려쓰고 한참을 걸어도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 푹신한 신발을 신었다. 이런 차림을 한 날은 사진을 찍기로 작정한 날이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란 걸 인식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인천대공원 입구(정문)


오늘은 마을 여기저기에 핀 능수벚꽃을 촬영하기로 마음먹었다. 능수벚꽃(수양벚꽃)은 능수버들처럼 축축 늘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수목원과 인천대공원 건강마당, 장수천, 만수산무장애나눔길, 장수동, 서창동 등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발길을 옮겨본다. 먼저 인천대공원으로 향했다. 버스가 기어가다 멈출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몇몇 사람들은 중간에 내려 걸어가기도 한다.   

  

인천대공원에 도착하여 ‘건강마당’에 핀 능수벚꽃을 맘껏 찍었다. 그다음 수목원에 갔을 때는 이미 마감 시간이었다. 순서를 바꿔 찍어야 했다. 하루에 다 촬영할 일도 아니었다. 교통체증도 문제였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체력이 문제가 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 못 한 이유는, 오직 사진만을 위한 계획이 아니어서다. 우울한 날엔 마을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오늘은, 인천대공원에서 가족들과 연인들이 쌍쌍이 벚꽃을 구경하며 다니는 모습을 보니 더 외로워진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 팔짱을 끼고 ‘나 어때?’하고 말을 걸고 싶어진다.   

  

인천대공원 건강마당의 능수벚꽃(수양벚꽃)과 연인들


다섯 잎의 끝이 하트 모양인 벚꽃잎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사방을 둘러보며 벚꽃을 사진에 담을수록 외로움은 더해갔다. 연인들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과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눈빛은 아름답게 닮아 있었다. 연인들은 벚꽃을 얼굴 가까이 묻고, 사이사이로 싱그런 미소가 새어 나온다. DSLR 카메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본다. 늘어진 벚꽃을 앞쪽에 두고 연인들이 위치한 중간지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배경도 흐리게 하여 오직 연인에게만 시선을 모았다. 능수벚꽃은 연인의 핑크빛 볼과 볼 사이로 흘러내렸다.   

  

인천대공원  건강마당 능수벚꽃(수양벚꽃) 전경


아빠는 아이를 목말로 태워 벚꽃과 더 가까워지도록 높이 올린다. 지나는 바람은 능수벚꽃과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있도록 흔들어 준다. 아이의 손과 벚꽃이 닿는 지점을 상상하여 원포인트로 초점을 고정시킨다. 한 번에 흔들림 없이 찍었다. 건강마당 한가운데에서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가 한창이다. 크고 작은 비눗방울이 날아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아이들. 덩달아 엄마 아빠도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비눗방울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감돌고 엄마와 아빠, 아이가 한 곳에 모여 함박웃음으로 투과될 때 한 컷. 빛이 부딪쳐 비눗방울에 미끄러지듯 난사할 때 또 한 컷.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뿜뿜’ 뿜어내는 비눗방울을 따라다니던 나는,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혼자 깔깔거리기도 했다. 카메라는 종일 이런 풍경들만 따라다녔다. 우리 아이들 초등 시절, 인천대공원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을 때 능수벚꽃 사이를 뚫고 정면광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온다. 조금 눈이 부시지만 요런 사진도 한 장 정도는 필요하다. 또 다른 사진 각을 상상하며 주변을 살핀다. 어릴 적 홍역을 치르느라 밖을 못 나간 적이 있다. 문살 사이의 누런 창호지를 뚫어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던 봄날의 시골 풍경처럼, 정자를 덮고 있는 초가지붕을 배경으로 축축 늘어진 채 바람에 휘감기는 능수벚꽃은 옛 풍경 그대로다.  

   

인천대공원 건강마당의 해지는 풍경과 하얀 티를 입은 연인.


하얀 셔츠를 입은 한 쌍의 젊은 친구가 능수벚꽃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라탄바구니(등나무바구니)를 열자 간단하게 먹을 간식거리가 보인다. 서로에게 먹여주기까지 한다. ‘저거 내가 받아먹고 싶다. 눈을 꼭 감고 입을 벌려볼까!’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4월 중순이지만 밤이 되면 제법 쌀쌀하다. 벚꽃 축제를 보려면 밤까지 있어야 할 텐데 셔츠 하나로 버틸 수 있을까! 엄마 같은 마음으로 걱정도 해본다. ‘내가 포근한 담요가 되어 줄게!’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져 집을 향할 무렵, 인천대공원 정문에서 한 젊은 여학생이 택시에서 내린다. 아뿔싸! 완전 한여름 복장이 아닌가! ‘아가야, 감기 들겠다!’ 나도 마음은 청춘이지만 벚꽃 축제를 뒤로 하고 다시 밥 하러 들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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