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첫 사회생활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저마다의 작은 사회로 나아간 뒤 집 안에는 깊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얼마 만의 고요였을까. 육아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그리워하고, 또 애타게 기다려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 고요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음악 한 곡조차 틀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집 안을 천천히 흐르는 고요한 시간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사치스럽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집안 곳곳에 부드럽게 퍼지는 정적은 마치 오래전부터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어떤 위로 같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엄마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은 채,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 생각의 속도를 천천히 늦출 수 있는 시간.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엄마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조용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육아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던 책들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다. 운동과 식단을 함께 관리하며, 체중을 10kg 가량 감량했고, 오래 바라던 목표 체중에 도달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듯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늘 어딘가로 출근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살아오던 나에게 이 계속되는 고요함은 어느 순간 또 다른 형태의 고문처럼 다가왔다. 그토록 바라왔던 시간이었지만, 무엇이든 넘치면 결국 독이 되는 것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기력함이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온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고요가 건네던 위로는 어느새 무거운 그림자가 되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일 속에서 짜증은 조금씩 늘어났고, 무엇을 해도 온전히 즐겁지 못한 채 마음이 늘 반쯤 잠겨 있는 듯했다.
이대로 내 삶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치 주문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기로 했다. 육아로 인해 멈췄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볼까 싶어 일본어 학교에 메일을 보내 문의도 해보았다. 새로운 것을 배워볼까 싶어 여러 가지 수업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산 지 어느덧 십 년 가까이 된 지금,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설령 무언가를 발견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이거다 하고 뛰는 열정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아마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음보다, 하고 싶은 마음을 찾는 일이 더 큰 과제가 되는 순간이 온다. 지금의 나는 바로 그 사이를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흔을 맞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집 근처 대학병원을 찾았던 날이었다. 1층 로비를 지나던 중, 병원 안에 자리한 일본의 대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 앞에 붙어 있던 커다란 구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매장을 리뉴얼하며 새로운 멤버를 모집한다는 문구.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글귀가 이상하게 마음 한편을 톡 하고 건드렸다.
그 여름, 아이들과 한국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그때 스쳐 지나갔던 구인공고가 다시 떠올랐다. 여름 내내 힘자랑을 하던 초록 잎들이 서서히 따뜻한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저녁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그 문구를 다시 떠올리며, 한 번쯤은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휴대폰을 손에 쥐고 모집 공고에 적힌 번호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더듬더듬, 하지만 마음을 다해 일본어로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일을 한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아르바이트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마흔이 된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전화를 걸고 면접을 보러 가기까지는 육아로 절여진 나에게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용기내 걸었던 전화는 다행히 연결되었고, 수화기 너머로도 미소가 전해지는 듯한 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짧은 대화 끝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약속된 날,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최대한 단정한 차림으로 면접에 임했다. 보수적인 일본, 그중에서도 유독 보수적인 이 지역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더 밝게 웃었고, 질문 하나하나에 최대한 솔직하고 정직하게 답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는 공간. 많은 이들이 까페라는 장소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유독 커피 향이 진하게 감도는 아늑한 까페를 좋아한다. 혼자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시켜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고 무엇이든 해도 괜찮은 그 시간. 타지에서 살아가며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이곳만 한 곳이 없었다.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에도, 육아에 지쳐 잠시라도 숨고 싶을 때에도 내가 찾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가족이 없는 타지에서, 모든 것을 끊임없이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두려움과 서러움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안고 쪼르르 달려갈 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웃으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까페는 어쩌면 잠시 마음이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였으리라.
그런 공간에서 일해보는 것도, 일본에서의 나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날, 점장님은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주었고 덕분에 나 역시 내 안에 있는 일본어를 모두 끌어모아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그 느낌을 믿은 채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본어의 경어는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도 손님들의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는 잠시 당황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것을 배워간다는 그 짜릿함은 육아로 무기력해져 있던 내 몸을 깨우며 천천히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함께 일하는 스텝들 또한 다행히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참 고맙고 또 고마웠다.
일을 하며 문득 일본에 오기 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같은 부서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유난히 말이 없고 차가웠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겠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뎌냈지만, 아침마다 회사 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해야 했다. 점심시간이면 말없이 함께 앉아 밥을 먹어야 했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불편하고 어색했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곳에서 만난 다정하고 친절한 동료들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타인과 무언가를 함께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동료애라는 감정은 발바닥부터 천천히 차오르며 마음에 만족이라는 단어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육아라는 일은 나 역시 처음 겪는 일이기에 늘 어렵기만 한데, 아무리 애써도 누구 하나 알아봐 주거나 칭찬해 주는 이는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해보는 이 일은 마치 나를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았고,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매달 정직하게 손에 쥐어지는 보상을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조금 으쓱해지곤 했다.
누군가는 힘들게 영국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영어를 사용하며 일하던 지난 시간들이아깝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공부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빠는 지금도 여러 부분에서 여전히 아쉬움을 표현하신다.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시절, 끝이 보이지 않던 긴 노동 시간과 맞바꾸어야 했던 내 건강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린 지금만큼은 엄마로서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이 시간만큼은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종류의 시간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하루하루는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나는 다시 나의 속도로 조금씩 자라고 있다. 육아로 인해 내 삶에서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어느 순간 나는 내 존재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었다. 스스로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고, 아무리 애써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사무치는 고립감과 외로움이 하루를 통째로 집어삼키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떨리는 마음으로 더듬거리며 전화를 걸었던 그때의 용기 있었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그날의 작은 용기가 나를 다시 나답게 살아가게 만들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를 다시 찾아가 보려는 마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기뻐지는지 천천히 되묻기 시작했던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어쩌면 지금의 이 소중하고 평온한 작은 일상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흔히 하는 말이지만, 결국 삶은 그렇게 증명되는 것 같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그리고 우리 가정도 함께 밝아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신명 나게 커피를 내리러 일터로 향한다. 이 먼 외국 땅에서,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 하루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차를 하고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인다. 이렇게 찰떡같은 일터를 허락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인 나에게도, 작지만 단단한 응원의 말을 건네며 이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