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일본 공립학교 입학
벚꽃이 이 도시를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계절이 오면,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회사의 새로운 분기도, 학생들의 새 학년도 모두 4월, 벚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새롭게 시작된다.
우리 가족에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이가 있었으니, 작년 12월에 만 여섯 살이 된 나의 첫째 아들 준이다. 준이는 올해 4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따뜻한 봄날 집 근처의 일본 공립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 학교 앞에는 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막 새것 냄새가 나는 란도셀들이 벚꽃 아래 줄지어 서 있었고, 아이들의 등에 얹힌 큼지막한 가방과 그보다 더 커 보이던 설렘이 이 봄의 시작을 또렷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인구 약 45만 명 남짓의, 일본에서는 비교적 작은 중소도시에 속한다. 이시카와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는 ‘작은 교토’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큰 피해를 비켜간 덕분에 옛 골목과 집들,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품은 건물들이 지금까지도 일상 속에 놀라울 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백 년을 훌쩍 넘긴 건물들이 여전히 숨 쉬듯 남아 있는 도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런 도시적 배경 때문인지 가나자와는 일본 안에서도 다소 폐쇄적이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어린이집과 학교를 오가다 보면 선생님들과 다른 엄마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일이 생기는데, 인사를 건네도 가끔은 무표정한 얼굴이나 일정한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따뜻하고 밝은 사람들이 있고, 모두가 차가운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이 도시에는 쉽게 녹아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선뜻 다가가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아들을 일본의 공립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도시와 달리 마땅한 국제학교가 없었고, 한 시간 거리의 미션스쿨이 하나 있다고 들었지만, 매일 아침 아이를 버스에 태워 한 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 앞에서 쉽게 마음을 정할 수는 없었다. 히라가나만 겨우 아는 상태로 일본에 건너온 나에게, 아들의 일본 공립학교 입학은 아이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숙제부터 각종 안내문까지, 종이로 된 모든 서류를 일본어로 받아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종이 한장 한 장이, 외국인 엄마인 나에게는 매번 용기와 각오를 요구하는 싸움의 시작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한다. AI가 이만큼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단순한 번역으로는 닿지 않는 일본어의 미묘한 뉘앙스도, 일본 학교라는 몇 개의 적절한 키워드를 얹어 검색하면 어느새 필요한 준비물부터 국어책 속 낯선 표현까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 엄마인 나에게, 마치 금빛 주전자에서 나온 파란색 지니 같은 이 친구는 더없이 든든한 조력자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에도 불구하고 처음은 늘 낯설다. 처음 받아 든 일본어가 가득한 준비물을 챙겨오세요라는 몇 장의 프린트는 내 손 안에서 유난히 무겁게 흔들렸고, 나는 종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멍해지곤 했다. 일본에서는 체육복에 아이의 이름을 바느질해 붙이고, 크레용 하나, 산수 도구 하나에도 이름을 빠짐없이 적어 넣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모를 때마다 검색창에 단어를 하나씩 넣어가며 확인하고, 남편과 천천히 상의하고,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유튜브 속 누군가의 설명을 통해 배워야 했다. 그렇게 나는 매번 작은 미션을 수행하듯 아이의 학교 생활을 따라갔다. 낯선 언어의 문턱을 넘고, 서로 다른 문화의 천장 아래 서서, 타국에서 살아야 하는 일상의 조각들이 매일같이 나를 시험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동시에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디에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이 삶은, 어쩌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온 몸으로 배우며 살아가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엄마의 끝없는 걱정과는 달리 놀라울 만큼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1학년 1학기 첫 통지표를 받으러 오라던 뜨거운 여름날, 교실 안에는 선풍기의 바람조차 미약하게 느껴질 만큼 긴장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밝은 얼굴로 말씀하셨다.
“공부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일본 아이들도 어려워하는 일본어 과목조차, 반에서 모두 백점을 받은 아이는 아마 준이 혼자일 거에요.”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저 고개를 끄덕인 채 교실을 나섰다. 아이가 잘 해냈다는 기쁨도 물론 컸지만, 이 낯선 언어와 낯선 교실 속에서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 한켠에서 잔잔히 기쁨이 차올랐고, 어깨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마치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던 한일전 경기에서 뜻밖의 역전승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이유 모를 웃음이 나는 그런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외국인으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일은, 단지 언어의 다름에서 오는 어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 엄마들의 무리 안으로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어쩔수 없음이 때로는 더 깊은 외로움으로 남는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 그 뒤에 남는 묘한 고요와 보이지 않는 거리감. 학교와 유치원에서 전해지는 소식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붙잡고 오래 머물러야 하는 긴장감. 그것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곳이 나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이 무거운 마음을 쉽게 덜어주진 않는다.
곧 겨울방학을 앞둔 아이는 학교생활이 즐거운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스스로 눈을 뜨고 옷을 챙겨 입는다. 란도셀을 단단히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그 뒷모습이 이제는 제법 의젓하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이와 함께 모르는 것들을 배운다. 숙제를 도와주며, 아이의 웃음속에서 다시 용기를 낸다. 외로움이 자라나는 만큼, 아이와 함께 나도 조금씩 자라나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낯선 땅에서 수많은 처음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나는 조용히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두 손에는 늘 짐이 가득하고, 마음 한켠에는 걱정이 가득한 채 오늘도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어떻게든 흘러가고 우리는 결국 해내고 만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존재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기적처럼 하루를 밀어내는 엄청난 힘이 우리 안에 있다. 서로의 그 강함을 믿으며, 오늘도 다시 한 번 조용히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