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의 완성

선량하고 지혜롭고 사려깊은 나의 친구들

by AOI BOOKS


인생을 오래 살아본 이들이 결국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그 오래되고도 집요한 질문에 대해,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거의 80년에 걸쳐 이어온 연구의 결론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돈과 부, 건강은 분명 행복을 이루는 중요한 조각이 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주는 힘은 결국 사람이라고.


같은 뜻을 품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힘이 되어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의 가장 깊고 오래가는 행복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 단순한 진실이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행복의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사의 얼굴들은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이다. 그들의 존재가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미숙했던 시절,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도, 마음을 나누는 방식도 몰라 자꾸만 뒤로 숨기 바빴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세상을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그 고마움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내 삶의 깊은 은혜로 남아있다. 평생 마음에 품고 고맙다 말하고 싶은 사람들, 고마운 친구들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스무 살 언저리에서 만난 인연들이라 아직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의 장난스럽고 순진했던 모습 그대로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 그랬던 우리는 어느새 엄마가 되었고, 누군가는 사장님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더러브.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사랑의 사람들. 나는 이 사람들이 늘 잘되기를, 무엇보다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 따뜻하고 단단한 사랑의 관계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오래도록 이어져 서로의 삶을 조용히 지켜봐 주는 힘이 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런던에서 만난 제이는 영국에서 네 아이를 키우다 마침내 한국에 정착한 친구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러 집에 들렀던 날, 제이는 우리를 위해 손수 집밥을 차려주었다. 그 따뜻한 식탁 앞에서 나는 이 친구가 지나온 시간의 깊이를 말없이 느낄 수 있었다. 네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제이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나보다 어리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늘 나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드는 친구다. 그래서 나는 제이를 떠올릴 때마다, 동생이라는 말보다 존경이라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언어도 문화도 낯선 홍콩으로 건너간, 런던시절의 소울메이트 밀휘 언니가 있다. 그곳에서 두 아이를 키워내며 지금은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차근차근, 그러나 단단하게 쌓아가고 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을 알기에 나는 언니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깊은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마라톤을 준비하고, 자선파티를 열어 자신이 받은 사랑과 축복을 다시 세상에 나누는 모습에서 언니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다가도, 이내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깊고 단단한 멋짐 앞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마음으로 언니를 응원하게 된다.


말하면 입 아프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중학교 친구이자 소울메이트 강똥은, 그저 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해 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고마운 친구다. 아주 사소한 귀여움까지 서로가 알아봐 주는 사이이기에, 우리는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함께 걷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보이면 멈춰 서서 감탄하고, 맛있는 것을 먹다 또 한 번 감탄하며 그 시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아주 추한 모습으로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한껏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만나기도 한다. 어떤모습이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이. 서로의 겉모습보다 존재 자체가 먼저인 관계다.


자기 분야에서도 멋지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신여성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강똥. 같은 MBTI를 공유하는 우리는 서로를 유난히도 잘 이해한다. 철부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이제는 각자의 삶을 단단히 꾸려 가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 우리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우리, 이만하면 꽤 잘 자라왔다고. 그리고는 서로를 다정하고도 쿨하게 말없이 응원한다.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또 어떤가. 마흔이 된 지금도 그때 함께 웃고 울던 얼굴들을 마주하면 우리는 여전히 소녀가 된다. 언제 만나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가고, 옛 기억에 낄낄거리다 어느 순간 울다 웃다 하며 소녀가 된것 마냥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꺼내 놓는다. 그리고 결국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서로의 안녕을 묻고, 앞으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마음. 그래서일까 애뜻하고 애잔하고 그 삶들을 온전히 보듬고 토닥이고 싶다.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조금 어둡고 불안했던 나의 유년 시절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부족한 나를 위해 곁에 머물러 주었고,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친구라는 이유로 나를 받아 주었던 사람들.


서른을 막 넘기며 교회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여전히 서툴고 흔들리던 시기였다. 그 시절 함께 밥을 먹고 삶의 고민을 나누며 울고 웃던 친구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삶의 든든한 기둥으로 남아 있다. 머나먼 타지에서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기도를 부탁하고 마음을 나눈다.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면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다시 중심을 잡게 된다.


한국에 갈 때마다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리고, 누군가의 집에 모여 아이들까지 한데 어울려 밥을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식탁을 내어 준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시간을 나눈다는 일이 일상의 흐름속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어쩌면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껴지지만, 그 친구들과의 시간만큼은 늘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생각해보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결국 식구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들이 친구라기보다 가족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언젠가 친구 딸아이의 꿈처럼 작은 마을을 만들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그런 상상을 가끔 해본다.


돌아보니 이들의 존재는 내 삶을 조용히 지탱해 준 작은 등불이었다.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친구들에게, 늦었지만 오래도록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일본에 와서 살아보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외국인으로서,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어느덧 두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평소 다큐멘터리나 가보지 못한 나라의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얼마 전에는 KBS에서 2014년에 방송했던 다큐멘터리, 일본에서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해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아내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재한 일본인 처라 불리는 그들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국에 남아 살아가고 있었다.


쪽바리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한국 땅에서 자식을 낳고 살아야 했던 그들은 이제 세월 속에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몇몇은 여전히 한국에 남아 노년을 보내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열아홉 어린 나이에 건너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뱃사공이 되기도 하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아낸 그 삶을 우리는 어떤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가족에게서조차 차별을 겪어야 했고, 생계를 위해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또 아이를 두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오롯이 몸으로 버티는 힘든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전쟁과 반일 감정이 남긴 분노의 시선을 평생 견디며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세월을 과연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지금도 할머니는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한국 사람처럼 김치를 먹으며 수십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까닭 없는 비난을 듣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그저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고요하게 상처를 견디며 흘러왔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아프게 다가왔다.


몇 해 전부터 널리 읽히기 시작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읽으며 나는 오래도록 많은 생각에 잠겼다. 소설 속 인물 중 한 명인 노아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장면을 읽던 날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추고,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크게 너울거렸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노아가 선택한 마지막이, 단지 소설 속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말도 통하지 않던 이곳에 와 일본어를 배우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속에서도 애써 이해한 척 웃어 보지만 마음 한켠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훗날 누군가는 내가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잘 살아냈다고 말해 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다가, 문득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엄마는 어린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조금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고.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제니는 그럼 엄마 꼭 안아줘야겠다 하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들까지 밥을 먹다 말고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고, 제니는 우리가족 모두 착하게 잘 지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 주었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오래된 상처를 이제는 어린 나의 아이들이 조용히 위로해 준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인지,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들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음이 감사하다. 부모님 또한 그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내 아이들에게 다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준 것이 또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상처로만 남을 줄 알았던 시간들도 결국은 이렇게 다른 모습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어디에선가 사람들은 참 귀엽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달리기를 하는 낯선 이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멀리 바다 위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해 괜히 손을 흔들어 주고, 모르는 아기가 메롱을 하면 따라 메롱을 해 주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어디에서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의 모양을 찾고, 한 해를 무사히 살아냈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 참으로 귀엽지 아니한가.


남편은 과일을 깎는 일을 귀찮아하는 나를 대신해 늘 과일을 깎아주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 엄마가 하는 모든 일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다정하게 협조해 주기도 한다. 깔깔거리며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노는 두 꼬마 덕분에, 여기가 어디든 다정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꽤나 만족스러운 요즘이다.




나는 여전히 완성을 향해 가는 중이다. 어쩌면 끝내 미완성인 채 삶을 마치게 되겠지만, 그 조차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기를 바란다. 결국 삶은 완성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다 끝나는 긴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조금 부족한 채로,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곧 그림같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가며 나누며 살 계획이다.


완벽한 집이 아니어도 좋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남편의 과일 깎는 소리, 그리고 내가 한숨 돌리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히 근사한 집일 테니까. 앞으로의 이 여정도, 웃고 먹고 조금은 허둥대며 여기에 차곡차곡 남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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