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죽음
나와는 소울메이트라 해도 좋을 만큼 각별했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초등학생이 되어 겨우 혼자 몸을 씻을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긴 여름방학이 오면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곤 했다. 전주 관촌,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로 알려진 남원 근처의 작은 마을이다. 관촌에는 전주 시내로 나갈 수 있는 낡고 작은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난방도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던 오래된 건물 안에는 작은 매표소와 몇 개의 상점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곳의 시간은 늘 천천히 흘렀다.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사선대라는, 자연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된 공원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촌 동생들을 이끌고 개울가를 누비며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잡아온 물고기들은, 내 팔보다 더 큰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던 마당에 있는 할아버지의 양어장에 몰래 풀어두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늘 밥을 차려주셨고, 밤이 되면 연속극을 보시다 이내 초저녁잠이 드시곤 했다. 모기향 냄새와 할머니의 냄새가 뒤섞인 그 여름밤의 공기는 지금도 코끝에 선명하게 맴돈다. 풀벌레 우는 소리,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서 잠들던 기와집과 삐걱거리던 마룻바닥이 정겹던 할머니의 집.
할머니는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얼굴 앞에서 방귀를 뀌기도 하고, 할머니의 뱃살을 작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크게 사랑해 주었던 사람이 아니였을까. 아직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아릿하게 저며온다.
우리할머니.
그런 나의 할머니가 연세가 들어 몸이 점점 불편해지셨을 무렵, 요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시간을 내어 꼭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더 이상 나를,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아득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원망스럽기 보다는 그저 가엽고 불쌍했다.
예뻐하던 큰 이모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마음이 아픈 우리 엄마를 안타까워 하시며 할머니는 때때로 한서린 목소리로 울곤 하셨다. 너무 고된 삶이었을까. 어느 순간 할머니는 모든 기억을 놓아버리고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그래도 내가 찾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밥은 먹었냐고, 어릴 적처럼 내가 참 예쁘다고 해주었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평소에 자주 전화를 하지 않던 사이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대개 아주 기쁜 일이거나, 아니면 아주 나쁜 일일 확률이 높다. 이른아침, 사촌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그 전화를 받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쿵하고, 아니 온 세상이 서서히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였다. 아빠는 임신 중기에 들어선 나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아빠는 우리사이를 잘 모르시는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나의 부모보다도 할머니와 더 깊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늘 생각해 왔으니까.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길을 내가 배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게 아닌가.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한국으로 향했다. 가까운 공항에서는 자리가 없어 오사카로 들어가 비행기를 타야 했다. 기차를 타고 오사카로 향하던 길, 저 멀리 하늘 끝까지 닿을 듯 커다란 무지개가 떠올랐다. 할머니다. 할머니가 나에게 잘 오고 있느냐고 조용히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뱃속의 아이도 아직 소개해 드리지 못했는데 너무 서둘러 가시는 것 같아 허망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여기까지인 사실이, 어쩌면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잘 걷지 못하셨고,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셨으며 누군가가 억지로 들이미는 수저에 의지해 식사를 하시곤 했으니까.
삶이 그토록 고단했으니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고 계실 것이라 믿고 싶었다. 늘 우아하고 다정했던 큰이모와, 평생 선비처럼 사셨던 할아버지는 이미 그곳에서 만나셨을까. 너무너무 보고싶은 나의 할머니. 나는 임신 중기의 몸으로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입관식과 매장지까지 이어진 긴 여정 속에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었던, 붉고 단단한 실 같은걸로 나와 영혼이 이어져 있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나는 한국에서 한동안 연락이 없으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고 가끔 걸려오는 남동생의 전화에도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마음일 것이다. 한국에 가 부모님을 뵙고 돌아올 때면, 하루하루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그 모습에 마음이 저려오고, 공항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내 삶의 한가운데로 돌아서야 할 때면, 설명할 수 없는 죄송한 마음에 또 한번 마음이 깊이 저려온다.
더 나이가 드시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늘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드는 질문이다. 내가 이렇게 먼 타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게 될 줄은 부모님의 계획에도 없으셨을텐데 어떤 마음이실까. 문득문득 마음에 걸린다. 걱정을 동반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막연한 불안 속에서 마음의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았다. 어린시절의 날카롭고 미숙했던 나를 묵묵히 참아주고 기다려 준 친구들에게서 나는 우정을 배웠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리와 질서를 배웠다. 그리고 런던의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저 스쳐 간 인연을 넘어, 지금의 내 삶에서 가장 든든하고 재미있는 존재들로 남아있다.
특히 같은 과였던 우리 셋은 각기 다른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음에도 마치 오래된 별자리처럼 서로를 놓치지 않고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정해진 약속도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모임을 한다. 세 개의 국가에서 줌으로 접속해 독서모임이라는 핑계를 대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읽은 책들은 어느새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제안해 읽게 된 책이 한 권 있다.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라는 책이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아버지, 그 곁을 지키는 어머니,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년의 딸이 있다. 이 책은 딸이 노년의 아버지에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며 함께 시간을 건너가는 이야기다. 딸은 인문학 책과 성경 같은 글들을 매일 소리 내어 읽어 녹음 파일로 어머니께 보내드린다. 부모님은 그 음성을 함께 들으며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던 시간, 마치 벌처럼 느껴졌던 일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딸의 목소리가 전하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길고 막막했던 하루들은 서서히 감사의 시간으로 변해간다. 그 변화의 과정이 이 책 속에 고요히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마음을 오래 짓누르던 불안과 질문들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마음 한켠이 은은하게 가벼워졌다. 비록 물리적 거리는 멀고,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사이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마음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아 보자고 다짐해본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는 날 그 마음을 정성스럽게 건네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픔도 이별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기를. 서로를 충분히 사랑하고 건강하게 천천히 이별할 준비를 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결국에는 후회가 남아 너무 슬퍼하지 않게 되기를.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일이 여전히 슬프게 느껴져 외면하고 싶지만, 그 마지막을 건강하게 그려보며 준비하는 일 또한 어쩌면 멋진 일일 것이다. 오늘도 그래서 아빠에게 카톡을 보내본다. 건강하시라고, 운동도 하시고 밥도 맛있게 잘 드시라고. 별다른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작고 소소한 마음을 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