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이 왜 이렇게빠졌냐 묻고, 예전에는 잘 입지 않던 청바지도 입는다.
이게 다, 술을 끊은 덕분이다.
나는 원래 술을 좋아했다. 나 홀로 마시는 화이트 와인과 맥주가 인생의 낙이었다. 백화점 와인 코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한 병씩 고르다가, 점차 맛을 알게 되자 2병, 3병씩 사게 되었다. 와인으로는 모자라 세계맥주 코너를 들러 한 묶음을 추가로 샀다. 그렇게 주량은 쉽게 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와인 혼술의 기록 (거의 매주 1~2병을 마시던 시절)
2018년 겨울, 가족들과 함께 교토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어라? 뭔가 불편했다. 이상하게 잇몸이 욱신거렸다. 아래 송곳니 하나가 빠져나갈 듯한 느낌이었다. 별 거 아니겠지, 했던 통증은 교토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고 3일째부터는 턱이 붓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여행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라며 매 식사마다 맥주 한 잔을 꼬박꼬박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나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치과에 갔다.
날 보자마자 실장님은 "잇몸 부어서 오셨네요. 언제부터 이러셨어요? 이거 가만뒀다간 큰일 나요" 걱정했고, 의사 선생님도 당장 잇몸 고름을 빼야 한다며 마취 주사부터 놓았다. 진단명은 '치근단 농양', 염증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고름이 생겼고 이미 잇몸뼈까지 녹은 상태. 의사 선생님은 대학병원에서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치아를 뽑아야 한다는 무서운 경고와 함께. '수술이라니...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대학병원은 대기자가 많아 무려 4개월을 기다려 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 통증이 재발할까 두려움에 시달렸고, 자연스럽게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수술후에도 아팠던 기억과 힘들었던 수술 과정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모임이나 회식에서 "에이, 수술한 지 몇 달 지났으니까 맥주 한 잔은 괜찮을걸?" 권유받았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그 한 잔이 또 다른 잔을 부르고, 다시 염증이 커질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1년 6개월을금주하고 있다. (가끔 한두 모금 마시긴 했지만) 이제 술 안 먹는 사람으로 주변에 인식이 굳어졌고, 그렇게 좋아하던 혼술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나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얻은 것
다이어트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매일 보는 회사 동료들이 알아볼 정도로 살이 빠졌다. 술은 술만 먹는 게 아니다. 술을 마시면 뭔가 먹고 싶고, 술과 함께 먹는 음식은 훨씬 더 맛있다. 술은 다 마셨는데 음식이 남았다면, 한잔 더 마시게 된다. 그렇게 무섭게 늘어나던 몸무게가 금주 6개월 만에 5kg가 빠졌다. 1~2kg 왔다 갔다 할 때가 있지만, 대체로 빠진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두통이 나아짐
나는 두통에 취약하다. 술을 좋아할 때도 다음 날 두통을 부르는 레드 와인, 소주는 못 마셨다. 금주의 효과인지, 야식이 줄어들어 속 부대낌이 덜해진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두통을 느끼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잃은 것
혼술의 재미
술을 못 마셔서 가장 괴로울 때는 언제일까?남들은 모임이나 회식 때 나 빼고 다들 술 마시는 게 가장 괴롭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혼술 못 하는 게 가장 괴롭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요즘엔 더더욱. 소고기 구워 먹을 때 와인 한 잔 곁들이면 3천배 맛있을 텐데, 피자에 맥주 같이 먹으면 세상 부러운 게 없을 텐데. 일요일 오후, 다음 한 주를 어찌 보내야 하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도 술 생각이간절하다. 그런데 이걸 못 하다니... 인생의 가장 큰 취미요, 낙을 잃어버렸다.
남과 어울리는 즐거움
사회생활에서 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더라. 아무리 술자리에서 취한 것 마냥 웃고 떠들어도, 깍두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이다나 탄산수 시키는 게 눈치 보이기도 한다. 우리 팀은 삼삼오오 번개 모임이 잦은 편인데, 술을 안 마시니 3~4번에 1번 정도만 참여하게 되더라. 진짜 어려운 건 연애. 얼마 전 라스에 윤은혜가 나와 '8년째 금주하니 연애도 끊겼다'라고 말했다. 너무 공감했다. 물론 밥 먹고 커피 마시면 되지만, 뭔가 '찌릿찌릿한 재미'가 덜 하다. 동료들과, 친구들과, 연애 상대와 술을 통해 더 친해지고 속마음 터놓는 즐거움이 있는데, 그걸 못 하니 자동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금주를 지속할 생각이다. 혼술을 대체할 좋은 취미를 찾고,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무알콜 음료를 섭렵하며, 꿋꿋이 금주인의 길을 걸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