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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lee Jun 16. 2020

모처럼 소개팅이 들어왔다

30대 소개팅 이야기 (1)

모처럼 소개팅이 들어왔다.


지난겨울 "후... 소개팅에 롱패딩을 입을 수도 없고 이 추운 날 코트가 웬 말이야" 투덜대며 한 시간 반 거리의 만남을 다녀온 이후, 다음 소개팅을  땐 사진부터 보고, 반드시 어디 사는지 으리라 다짐다.

불행히 올봄 로나로 인해 그럴 기회 조차 없었다.

'올해는 누굴 만나긴 글렀구나' 생각 때 즈음, 갑자기 직장 동료들로부터 소개팅 제안을, 그것도 3번이나 받게 된다.


첫 번째 제안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한 동료가 물었다.

(동료) "나이 차이 몇 살까지 괜찮아요?"
(나) "80년대 생이면 돼요. 80부터 89까지. 제가 86 이거든요."
(동료) "저랑 친한 형님이 딱 80인데 진짜 사람 좋고 인상이 선하거든요. 만나볼 생각 있어요?"


서른다섯 여성에게 소개팅 흔치 않다. 어오면 무조건 해야 한다. 게다가 (5년 전 사진이긴 해도) 인상 좋고 회사도 좋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Kaylee. 소개연락드려요. A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나를 '님'이라고 부른 소개팅남. 내가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온다. 이렇게 갑자기?


(소개팅남) "안녕하세요. 제가 운전 중이라서 전화를 드렸어요."
(나) (당황했다) "어어 아아 네네 안녕하세요"
(소개팅남) "Kaylee님 집은 어느 쪽이세요?"
(나) "저는 고양시에요"
(소개팅남) "앗 그러시구나. 제가 사는 곳 들으면 놀라시겠네요. 저는 수원입니다"


망했다.

 번의 경험으로, 집이나 회사가 가까워야 잘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안다. 30대는 피곤하다. 주말에 누굴 만나러 멀리 나가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남자분도 같은 생각일 거다. 하지만 워낙 목소리가 친절했고 이미 소개를 받기로 했으니, 이제 와서 그만둘 순 없었다.

그는 이번 주는 월말이라 바, 다음 주에 보자고 했다. 나도 좋다고 했다. 정확한 약속은 다시 연락해서 잡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리가 멀긴 해도  정도면 쁘지 않았다.


일주일 , 그에게서 연락이 늦어 미안하다는 카톡이 왔다. 접촉사고 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다. 교통사고라니? 잘 모르는 사람이긴 해도 사고가 났다니 걱정이 되었다. 우선 병원부터 잘 다녀오시라고, 약속은 천천히 잡자고 했다.

이후 몇 차례 안부인사가 오갔지만, 뭔가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답장은 한참 뒤에 왔고, 그마저도 단답.


그는 며칠간 연락이 없더니, 금요일 밤 다시 카톡을 보내왔다. 고 때문에  휴가를 냈다며, 연락이 늦어  한 번 미안하다.  그가 괜찮은지 물었 하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소개팅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부 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카톡으로 물었다.

 

(소개팅남) 이번 주말은 쉬시나요?
(나) 네, 별다른 일정 없어요. A님은요?
(소개팅남) 저는 모든 일정 취소요...


 그래서요? 이게 끝인가?

그는 약속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해는 한다. 접촉사고로 휴가까지 냈던 사람이 주말에 소개팅고 싶진 않을 거다. 그럼 당분간 못 만날 것 같다고 하는 게 낫지 않. 시간 맞춰보자고 했다가, 아프다고 했다가, 나아졌다고 했다가, 미안하다는 말의 반복. 대체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빈정이  '맞아요. 그러셔야죠'라고  하고는,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두었다.


이후 그에게서 부재중 전화 와 있었다. 밤 11시 30. 아무리 금요일 밤이도 그렇지, 늦은 시간에 느닷없이 전화해 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그냥 이 분과는 여러 가지가 안 맞는 걸로. 주선자에게 죄송하지만 이쯤 되니 안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


조정석, 한지민이 소개팅 상대라니 (출처: SBS 질투의 화신)



두 번째, 서류 전형이 있는 소개팅 (feat. 아버님)

퇴근 전, 친한 후배가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한다.

"아는 어른이 자기 아들 소개해줄 사람 없냐고 하시는데. 남자분 사진 보니까 과장님맘에 들어할 거 같아서요. (사진을 보여주며) 어때요? 괜찮죠?"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와 잘생기셨는데? 정말 내가 나가도 될까?"

"네, 그런데 그 아버님이... 음... 사주를 많이 따진대요. 미리 생년월일시랑 어느 학교 나왔는지 알려주면, 만나기 전에 아드님이랑 잘 맞을지 사주를 보고 싶대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 아버지가 직접 아들 소개팅 시켜줄 정도면 그런 거 물어볼 수도 있지, 싶었다. 게다가 정말 흔치 않은, 얼핏 봐도 훈남이었다.

"다 알려!"

나는 후배에게 생년월일시, 고등학교, 대학교 정보를 려줬다. 아마  이름 모를 남자분과 나의 운명이 점쳐질 테. 결과에 따라  여부가 정해질 데, 과연 나는 그와 만날 수 있을까?



서른다섯. 이제 소개팅에 큰 기대감은 없을 나이다. 연애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기에, 그 가능성을 좀 높이고 싶을 뿐인데 첫 만남조차 쉽지 않다.

생년월일시를 알아간 어른에게 묻고 싶다. 제 사주팔자 어떻게 나오던가요?



*이미지 출처: SBS 질투의 화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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