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0일, 처음 필라테스를 한 날이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1) 인바디 측정 때마다 체지방 과다, 근육 부족이라는 결과가 부끄러웠고,
2) 마침 잇몸 수술과 임플란트를 끝낸 직후라 살이 빠져 근육을 붙이기 좋은 때였다.
3) 무엇보다도 체력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한 탓에 짜증이 늘고, 저녁 9시면 자동으로 눈이 감겨 회식이나 모임을 망설일 정도였다.
10년 차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헬스장과 요가 학원에 기부한 금액이 꽤 된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한 가지를 꾸준히 하지 못하고 3~6개월마다 종목과 시설을 바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자!' 다짐했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강제성 없이는 절대 스스로 운동화 끈을 조여 매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집 근처에 새로운 필라테스 센터가 생겼다. 때 마침 추석 상여금도 나왔다. 적기였다.
운동은 워낙 오랜만이고 초반에 자세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일대일 10회를 등록했다.
과연, 첫날은 내 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매트에 누워 숨 쉬는 방법부터 배웠다.
"코로 깊게 들이마셨다가, 갈비뼈를 닫으면서 배를 쪼이는 느낌으로 숨을 끝까지 내뱉으세요"
"갈비뼈를 닫아요?"
"네, 갈비뼈를 모아주면서 배에 힘을 꽉 주세요. 앗, 그렇다고 어깨까지 움츠리시면 안 돼요~"
"후~ (어질어질)"
"목에는 힘 빼셔야죠"
그렇게 호흡을 하며 귀와 어깨가 멀어지게 하고 (그러면서도 힘은 빼야 함) 흉곽을 닫는 연습을 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흉곽을 닫으면서 허리와 어깨를 쫙 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안된다.) 강사님은 내 몸 마디마디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잘못된 부분을 콕콕 집어주었다.
필라테스 하면 연예인들처럼 기구에 매달려 예쁜 동작을 할 줄 알았는데... 숨만 쉬어도 땀이 났고 ,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생각보다 엄청난 운동이었다.
3~4회 차부터는 기구에서 동작을 배웠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숨 쉴 때 어지러웠던 증상은 나아졌고 동작에 욕심이 생겼다. 비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우스꽝 스러웠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느낌이 좋았다.
10번의 1:1 강습이 끝나고, 6:1로 옮겼다. 세심함은 부족했지만 강도는 높아졌다. 다만, 1:1은 개인 약속이기에 좋든 싫든 빠질 수 없다면, 6:1은 당일 아침에 수업을 예약하는 시스템으로 빼먹기 일쑤였다. 안 되겠다. 나에겐 여전히 강제성이 필요하구나. 이 무렵, 건너편에 1:1 전문 필라테스 센터가 새로 오픈했다. 구경차 들렀다가 강사님의 카리스마와 멋진 시설에 반해 바로 등록해 버렸다.
9개월 째 다니는 이너프 필라테스
2020년 1월 새로운 센터에서, 새해를 맞아 운동을 결심한 동생과 듀엣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3월과 9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빼면 마스크를 쓰고 주 2회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 2020년에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하나로 기억될 만큼.
지난 1년 간 필라테스를 하면서 나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두통과 허리 통증 완화, 생리주기가 다시 35일 미만으로 돌아옴 (혈액순환이 잘 되기 때문일까?)
미세한 힙업. 몸통이 작아진 느낌. 나만 알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특히 금요일 저녁에 하는 운동은 평일의 끝이자,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금요일에 운동하면서 일주일 간 받았던 회사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잊는다. (물론 일요일 저녁에 다시 돌아오지만...)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는 만족감. 예전에 안되던 동작이 가능해질 때 뿌듯함
동생과 함께 운동하며 더욱 돈독해진 자매 사이 (원래도 동생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
아쉬운 점은,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할 때 목표했던 체지방 감소, 근육량 증가, 체력 향상의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영양제와 커피로 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1년 동안 직접 경험하며 느낀 효과 (효과가 크지 않은 부분마저도)이기에 의미가 있다.
서른다섯에 운동의 재미와 의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를.